비오늘날의 아침
어젯밤도 비에 젖어서 들어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도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원래 입고온 보드복이 어차피 방수제질이라 그냥 보드복을 입고 돌아다닐까 생각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카메라 렌즈가 든 가방은 젖을수밖에 없었고 계속해서 보드복 모자를 쓰지않는이상 머리가 젖는걸 막을수도 없었다. 깜빡하고 한국에서 올 때 우산을 챙기지 않아서 우산사는돈이 너무 아까웠지만 어쩔수 없이 그냥 우산을 사기로했다. 보통 비오는날이면 우리나라나 이곳이나 지하철 역으로 가면 우산장수를 바로 만날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잠시 쉬다가 보드복을 입고 근처 메트로 역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내가가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우산장수가 있었다.
"우산 얼마야?"
"이건 작은건 5유로, 큰건 10유로"
"한번 만져봐도되지?"
샘플우산같은게 몇개 있어서 만져보고 펼쳐진것도 확인을 해봤다. 큰게 조금 튼튼해 보였지만 가지고 다니기 불편해 보여서 그냥 작은거 하나를 5유로 주고 사기로했다. 흥정이고뭐고 어차피 5유로 할꺼같아서 딱 5유로 지폐 하나만 들고왔었다. 우산을 사고 다시 숙소를 향해 달려갔다. 우산도 구입했고, 코트는 어제 비를 많이맞아서 오늘은 그냥 하루종일 숙소에서 말리기로하고 그냥 보드복을 입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묻은 이상한것들이 도대체 잘 지워지지가 않아서 별로 입고싶지가 않았지만 어쩔수없이 그냥 입었다.
테르미니역(Termini)
숙소앞을 나와서 드디어 로마를 걷기 시작했다. 첫날엔 외곽을 위주로 다녔고 둘째날은 바티칸 투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드디어 로마를 느끼는 날.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큰 규모는 아니여서 천천히 다니면 충분히 볼수있을것 같았다. 숙소 근처는 아시아계와 흑인이 많이사는 조금 질이 떨어지는 지역이었다. 몇몇의 한인식품상점과 한인식당도 볼수가있었는데 그닥 가고싶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간혹가다 이곳에 사는 아시아인들을 만났지만 왠지 대부분 중국인처럼 보였다. 일단은 여행의 출발점인 테르미니역으로 가기로했다. 첫날 도착했지만 정신없이 떠났던 그곳. 오늘도 딱히 볼일은 없고 일단 그곳에서 시작하기 위해 갈뿐이었다.
천천히 역에 도착하니 역앞에는 역시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구걸하는사람, 집시들, 우산파는사람, 이제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사람, 이제 막 로마에 와서 들뜬사람들. 이제 막 로마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쉽지만 비가 내리는 너무 우울한 날씨라서 좋은 기분을 망치는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냥 비를 맞으면서 다녔다. 우산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객들. 엄청나게 내리는 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맞으면 흠뻑 젖는양의 비인데도 우산을 쓰지않고 다니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테르미니역 앞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오늘의 경로를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Thermae Diocletiani)
일단은 테르미니역에서 가장 가까운 로마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실 박물관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이곳에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이 있었다. 말그대로 로마의 황제중 한명이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목욕탕이 있던곳인데, 로마에는 이런 욕장들이 몇몇개 남아있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아직은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싶었다. 비를 맞으며 로마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욕장의 흔적을 볼수가 있었다. 다양한 유물들중에 특히 눈에 띄었던게 박물관 입구 앞에있던 큰 분수같이 생긴 구조물이었다. 마치 옛날 목욕탕 가운데에 있었을것만 같은 모습에 눈여겨 보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자체가 욕장의 일부이기는 한데 입장료가 있었다. 사실 들어가봤자 뭐 별로 볼게 있을까란 마음에 박물관 앞 정원만 열심히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천사와 순교자를위한 성모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e dei Martiri)
국립박물관을 나와서 다음 목적지인 천사와 순교자를위한 성모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이름은 엄청나게 거창한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가 직접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의 일부를 이용해서 만든 성당이기도 하다. 박물관과 그렇게 거리가 먼것은 아니지만 그 거리를 생각하면 예전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수가 있었다.
성당 앞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다. 그런데 날씨도 구려서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사실은 분수보다 성당에 놀랐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거대한 모습에 순간 놀랐다. 이곳 안으로 들어가면 과연 성당의 모습이 있을까 궁금하기도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니 그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판테온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있었다. 원형돔의 구조에 천장이 뚤린 모습. 성당 내부의 모습은 크게 다른성당과 다른것은 없었다. 성당 안쪽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듯한 길이 보였지만 역시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크게 둘러보지는 않고 곧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하기전 성당을 나와 오른쪽을 보니 뭔가 복원작업을 하는 곳처럼 보이는곳이 있었다. 골목을 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복원작업을 하는곳은 다름아닌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이었다. 사실 복원을 하는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기만 하는것 같았다. 현재도 유물이 발견되는 곳이기도 하니 이곳저곳 복원중인것 처럼 보이는곳들이 꽤 많았다. 아까 못들어간 박물관 뒷편의 일부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욕장의 크기가 워낙 크니 도대체 상상도 불가능했다.
퀴리날레 궁전(Palazzo del Quirinale)
다음 목적지는 퀴리날레 궁전으로 정했다. 옛 궁전이며 현재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곳이기도했다. 로마의 일곱개의 언덕중 가장 높은 퀴리날레에 세워진 이 궁전은 언덕에 세워져있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는듯 엄청나게 높은곳에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퀴리날레 궁전에 도착했다. 안쪽에선 무료 전시회같은걸 하고있어서 그것을 보기위해 들어갔다. 화장실과 전시실 이외에는 다른곳은 경비가 삼엄해서 갈 수가 없었다. 별건 아닌데 간단한 스캔까지 한뒤 입장을했다. 사실 전시보다는 퀴리날레 궁전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다. 대통령 관저라니.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같은 곳인데 이곳을 이렇게 개방하다니 새삼 놀랍기도했다.
우리나라 청와대의 경우에도 물론 투어도 하고 여러가지 개방도 되어있지만 사실상 개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들이 따른다.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는건 아니지만 지도에서도 지우고 쉽게 들어가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의 모습만 보다가 너무나 쉽게 대통령 관저에 다가갈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순례길을 걸으며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을때도 국경이란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터라 신기했는데 이 경우도 비슷했다. 너무 깊게 나간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정치인과 시민사이에 알수없는 벽이 많이 존재하다는걸 새삼 느끼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퀴리날레 궁전을 방문한뒤 이어진 내리막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궁전 안쪽으로 들어갈수 있는듯한 또다른 입구를 보았다. 이곳역시 경비가 삼엄했는데 왠지 대통령이 드나드는 입구처럼도 보였다. 마음은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총맞을지도 몰라서 그냥 내려갔다. 내려막길이 끝날 무렾 골목을 돌고돌아 만난것은 다름아닌 트레비 분수였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아니 어찌보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라고 생각되는 바로 그 트레비분수.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분수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분수를 뒤로하고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며 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커플들이 키스를 하는 장면도 심심치않게 볼수있었고. 잠시 분수앞에 앉아서 그냥 분수를 구경했다. 한국은 분수보다 폭포, 외국 특히 유럽은 폭포보다 분수를 자주 볼수가 있다. 하늘로 올라가는 분수와 땅으로 내려오는 분수만큼이나 한국과 유럽은 많이 달랐다. 이런 쓸대없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그쳐서 우산을 접고 다닐수가 있었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다음 목적지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바로 그 장소! 스페인 광장과 계단이다. 사실 로마의 휴일을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스쿠터를 타고 로마를 돌아다니는 장면이나 진실의 손에 손을넣는 장면등 TV자료화면으로 나온 것들은 심심치않게 볼수가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면서 배가 고파서 뭔가 먹을까 했는데 딱히 끌리는 음식들이 보이지 않아서 패스했다.
드디어 계단에 도착. 어느덧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다시 쓰고 계단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날씨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조금 과장해서 관광객보다 장사꾼(이라고 불리는 사기꾼)들이 더 많았다. 꽃을 강매하고 팔찌나 이런저런 것들을 강매하는 상인들을 진짜 유럽와서 가장 많이 본것같았다. 일단 왔으니 올라가봐야해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안녕? 로마 어때 멋지지?"
"...."
"다른게 아니라 진짜 좋은거 있는데 한번볼래?"
"...."
"축구좋아해? 이나모토가 요새 진짜 잘하더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야"
"나 한국인이야"
"아.........."
이렇게 개무시를 하고 계단을 묵묵히 올라갔다. 당시 이나모토라고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축구팀인 인테르에서 주전 수비수를 하는 일본인 선수가 있었다.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했는지 일본 축구선수를 엮어서 뭔가 해보려고 한 심상인데 제대로 엿먹이고 올라갔다. 올라가서 본 모습은 기대했던것과는 조금 달랐다. 위에도 뭔가 있길래 주변을 한번 돌아다녀봤다. 그런데 갑자기 우박이 엄청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이 있긴했지만 그래도 혹시몰라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일단 몸을 피신했다. 약 1~2cm정도 되어보이는 우박들이 쉴새없이 떨어지다가 이내 멈췄다. 어째 로마도 날 별로 안반기는 모양이다.
위쪽에는 뭐 크게 눈길이 가는게 없어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로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까 그놈이 또 따라붙는다.
"너 한국인이지? 내가 아는 여자있는데 오늘밤에 같이 놀래?"
"...."
"걔 진짜 죽여줘 오늘밤에 같이놀자"
"...."
"그러지말고 이거 한번 차봐.."
"저리치워"
갑자기 친한척 하면서 다가오면서 이번에는 팔찌를 채우려고 하길래 바로 손을치고 정색했더니 이내 다시 사라진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나는데 대충 저런 뉘양스의 대화를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했다. 아까 일본인으로 착각할때는 영어로 하더니 한국말이 쉬운가보다. 그렇게 같은 사기꾼을 2번 엿맥이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스페인 계단에서 조금 더 외곽쪽으로 걷다보면 포폴로 광장을 만날수가 있다. 이곳에서도 오벨리스크를 볼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로마제국의 전리품으로 오벨리스크를 챙기다보니 로마에선 오벨리스크를 자주 만날수가 있는것 같았다. 비가 와서 광장에 많은 사람들은 안보이고 오른쪽을보니 언덕이 있어서 언덕에서 광장을 바라보기위해 바로 올라갔다.
핀초언덕(Pincio)이라 불리는 이곳도 역시 꽤나 높은곳에 있었다. 개인적인 체감상으로는 아까 퀴티날레 언덕보다 높은느낌. 언덕을 오르는데 왠 화장실이 보이길래 바로 들어갔다. 사실 화장실을 조금 참고있었는데 마침 화장실이 보여서 갔는데 유료화장실. 0.5유로나 내야하는 유료화장실이었지만 왠지모르게 관리하는분이 안보였다. 그래서 관리자 오기전에 재빨리 볼일보고 나왔다. 아무래도 볼일보는데 돈내는건 여전히 안익숙하다.
언덕을 오르니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가지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는데 날씨좋은날 이곳에 올라오면 기분이 참 좋을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오늘은 날씨가 우중충해서 별로라는점. 언덕 한켠에 왠 십자군 전쟁때의 군인들의 모습같은 동상들도 볼수가 있었다. 잠시 난간에서 광장을 구경하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아우구스투스 무덤(Mausoleo di Augusto)
포폴로 광장 옆으로는 테베레강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까지 도심을 가로질러도 되었지만 그냥 강변을 산책하고싶어서 테베레강을 옆에끼고 걷기 시작했다. 도착한 첫날 걸었던 강과는 사뭇 다른느낌. 강을 중심으로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느낌도 있었다. 조금 걷다가 위치를 확인하려고 지도를 보니 근처에 아우구스투스 무덤이 있었다. 로마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무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눈으로 확인을 하기로했다. 그런데 사실 황제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초라해보였다. 보수공사중인지 원래 그런지 입장도 안되었고 그냥 눈으로만 볼수있었다. 무덤 자체도 엄청 예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일부러 그 형태 그대로 보존을 하는듯해보였다. 들어갈수가 없는건 아쉬웠지만 그런데로 만족하고 다른곳으로 이동했다.
천사의 성과 로마 대법원(Castel Sant'Angelo & Palace of Justice)
테베레강을 계속 가다보니 바로 천사의성을 만날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 모습이 조금 다르다. 내가 아는 천사의성은 들어가는 다리에 장식들도 굉장히 많고 천사도 있다고하는데 이곳에는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천사의 성이 아닌 대법원의 모습이었다. 천사인줄 알았 꼭대기에있는 동상은 마차를 타고있는 정의의 여신인것 같았다. 천사의 성으로 착각을 할만큼 대법원의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안에서 판결을 받는 사람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겠지..
대법원을 지나 다음다리가 바로 천사의 성을 들어가는 천사의 다리(Ponte Sant'Angelo)였다. 천사의 성이라는 이유는 아무래도 꼭대기에 있는 천사의 모습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래 공식명칭은 산탄젤로성인데 사실 성은 아니고 무덤이라고한다. 안까지 들어가기엔 시간이 조금 촉박해서 겉모습만 구경하고 다리를 절반정도 걸어서 잠시 테베레강을 바라보았다. 다리에서 어제 봤던 바티칸 대성당도 잠시 구경하고 테베레 강도 보는데 비때문인지 어제보다 물이 더 불어났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다시 로마 시가지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로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나보나 광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너무 배가고파서 뭘 먹을까 하다가 사람들 손에 있는걸 유심히 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피자를 손에들고 먹으면서 다니는걸 볼수있었다. 뭔가 싶어서 궁금했는데 마침 지나가다가 피자가게가 있길래 무작정 들어갔다. 이탈리아 본토의 피자집은 어떤모습일까 궁금했는데 꽤 색다른 모습이다. 여러가지 피자를 미리 만들어놓고 팔고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먹는 둥그런 원형의 모습이 아닌 길쭉한 타원형의 모습의 피자였다. 미리 만든 여러가지 피자중 사람들이 원하는 맛을 자기가 골라서 포장해 갈수가있었다. 100g당 얼마의 기준을 놓고 판매했는데 가격도 꽤 싸고 너무 맛있어보였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장님이라 원하는 피자를 고르고 바디랭귀지를 통해 피자 200g을 손에 얻었다. 로마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피자를 먹는 내 모습을 보니 마치 이탈리아 현지인이 된것같은 착각도 잠시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맛이 최고였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피자집이 스페인에서 먹은 도미노보다 훨씬 맛있었다.
피자를 먹으며 나보나 광장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광장의 모습은 역시나 우중충한 날씨때문에 조금 빛이 바랬다. 그런데 무엇보다 충격적인건 분수대에서 비둘기를 먹고있는 갈매기의 모습이었다. 어제 바티칸을 갔을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구나 싶어서 눈으로 확인해서 신기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어제 바티칸에서 가이드가 설명해준 내용중 하나가 갈매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귀여워 보이는 갈매기지만 가끔 부리에 빨간게 보이는데 그게 새를 잡아먹고 피가 묻은거라고했다. 갈매기가 비둘기보다 훨씬 강하기때문에 날아가면서 비둘기를 괜히 쿡쿡 찌른단다. 그러다가 비둘기가 힘을잃고 떨어지고 갈매기는 그 비둘기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었다. 분수대의 그 갈매기는 분수에 비둘기를 씻으며 맛있게 살을 파먹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보고 구석에서 비를피하며 피자를 먹고 있었다.
판테온(Pantheon)
나보나 광장에서 멀지않은곳에 판테온이 있었다. 고대 건축물중 가장 원형의 모습그대로 있는 건축물인 판테온은 그 구조 자체가 너무나 독특했다. 가운데 뚤려있는 원형의 모습은 너무나 신기했다. 현재는 성당으로 이용이 되는것 같았는데 내가 알기론 내부의 온기가 하늘에 뚤려있는 구멍으로 향하고 그로인해서 비가 와도 그 온기가 보호막의 역할을 해서 비가 안들어온다고 알고있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알고있는건지 비가 하도많이와서 그런건지 건물 안으로 비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구멍이 뚤린 그자리 아래에는 배수구도 설치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들어오는것 같긴했지만 그냥 기분탓이겠지. 비대신 햇빛이 비추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잠시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판테온을 구경했다. 사실 오늘 하루종일 어딘가 앉아서 구경을 하질 못한것같다. 계속 비를 맞으며 걷기만 열심히 걸었지 앉아서 쉴틈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일 떠나야 하고 오늘 내로 많은것을 본다는 부담감 떄문이 아닐까? 안그러려고 했지만 역시 이탈리아의 촉박한 일정은 어쩔수가 없었다. 트랜이탈리아로 미리 표를 예매했기때문에 아쉬워도 어쩔수없이 일정에 맞추어 이동을 해야했다. 나름 신경을 써서 짜긴했지만 역시 와서 즉흥적으로 돌아다니는게 가장 좋은데. 판테온에서 사실상 오늘의 첫 휴식을 취하며 고대 로마의 모습을 다시한번 상상해보았다.
내맘대로 지나다니다 개고생
이제 마지막 남은 목적지는 포로로마노 구경이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때문에 어차피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있고 이제부턴 지도를 안보고 내맘대로 돌아다니기로했다. 일단 첫날 한차례 구경을해서 포로로마노가 어딨는지도 알고 그냥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보면 나올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한시간을 헤맸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판단했을땐 애초에 시작부터가 잘못되었었다. 아예 반대방향으로 향해서 왜이렇게 내가 생각한곳이 안나오지? 라는 마음을 가지며 걷다가 만난건 내가 생각했던 그곳이 아니라 아까 봤었던 스페인 계단을 다시 마주했다. 그걸 보자마자 순간 패닉이와서 지도를 펼쳤다.
'정반대' 내가 온길은 정반대였다. 괜히 객기부렸다가 시간만 날려먹었다. 이제부턴 지도를 보고 안전한길로 다시가야지. 지도를 보며 열심히 걸어서 다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한창 교대식이 진행중인것 같았다. 잠시 교대식도 구경하고 일단은 포로로마노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은 닫혀있었다. 아마 내 기억엔 4시까지로 기억한다. 어쨌든 포로로마노는 닫혀있었다. 결국 구경하지도 못하고 힘만 빠졌다. 괜히 뻘짓해서 또 이렇게 날려버리는구나.
힘이 쫙 빠졌다. 일단 어제 구경못했던 부분도 있어서 바깥에서 그 부분을 구경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숙소로 가는길의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에 콜로세움이 있어서 또다시 콜로세움과 인사를 한뒤 사진을 찍었다. 내 우울한 기분을 축하라도 해주는것일까? 점점 날씨가 맑아진다.
로마의 야경
마지막에 개고생을 한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포로로마노 안에서 구경을 못한것도 마음에 걸렸고. 이대로 숙소로 가면 너무 아쉬울것 같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있었다. 어차피 콜로세움의 야경은 찍었고 다른건 몰라도 트레비분수의 야경을 찍고싶었다. 야경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쯤 가면 조명을 받고있는 트레비 분수를 볼수가 있을것같았다. 그리고 완전 어두운 하늘보다 오히려 지금이 보기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트레비분수로 향했다.
트레비 분수까지는 다행히 길을 헤매지않고 잘 도착했다. 날씨가 조금 좋아진 탓일까? 아니면 조명탓일까? 아까 봤던 트레비 분수와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오늘 봤던 그 어떤것보다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또다시 트레비 분수 앞에서 넋놓고 바라보다가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향하며 보는 로마의 야경은 뭐 별거없었다.
브라질 친구와의 만남
숙소에 와서 바로 저녁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저녁메뉴는 스테이크와 볶음밥. 미리 쌀을 사놓은게 있어서 그걸사용하고 고기도 미리 사놓은게 있었고 야채와 뭐 간단한 반찬정도의 메뉴만 마트에서 구입했다. 요리를 다 만들어서 식탁에 앉아서 밥을먹고있는데 갑자기 내앞에 한 친구가 앉았다. 맛있게 보인다며 관심을 가진 친구였는데 한입 먹을꺼냐고 물으니 배부르다며 사양했다. 안그래도 심심한차에 갑자기 온 친구와 밥을먹으며 이야기를했다.
브라질 출신 백인이었던 이 친구는 그냥 놀러왔다고한다. 브라질 출신이라 당연히 축구를 좋아할줄알고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마침 2014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열리는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사실 자기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브라질 사람들은 당연히 다들 축구를 좋아할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그럼 무슨말을 할까하다가 갑자기 아마존의 눈물이 생각나서 아마존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방송국에서 아마존에 방문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을 방송했다며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계속되고있는 아마존 삼림의 병폐화와 줄어들고있는 삼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렇게 말하니 엄청 거창한 이야기를 한것같지만 사실 나도그렇고 그친구도 그렇고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서 생각보다 깊은 대화는 하질 못했다. 밥을먹다가 어느덧 밥을 다먹고 내가 산 주스를 한잔 주며 같이 마시면서 대화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나중에 한국도 한번 와보라는 이야기도 뺴놓지 않았고.
로마를 떠날 준비
이제 내일이면 로마를 떠나기때문에 대충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역시 많은 추억을 남긴 로마였다. 역시나 가장 아쉬운건 날씨. 이놈의 날씨때문에 기분을 망쳤다. 그래도 바티칸의 모습이라던지 로마라는 도시 자체가 풍기는 느낌은 너무 좋았다. 어떤 유명한 건축물을 본다기 보다는 로마 자체가 하나의 유물이라는 말을 무엇보다 가슴깊이 느낄수가 있었다. 아쉽지만 어쨌든 내일은 로마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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