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 걷는 길
아침에 일어나니 평소보다 많이 어두웠다. 그도 그럴것이 시차때문에 1시간이 바뀌어서 상대적으로 포르투갈에서보다는 일찍 일어났지만 아직 지역이 크게 바뀌지 않아서 어두웠다. 일어나서 창문을 봤는데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하려고 하는지 그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바로 카메라로 사진부터 찍었다. 준비를 마치고 알베르게를 떠나려고하는데 1층 식탁에서 러시아 친구들이 식사를 하고있었다. 사실 계속 지켜봐왔는데 아무래도 채식주의자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어제 루비아스에서 같이 잘때도 요리를 해먹는데 그냥 야채볶음만 먹고, 오늘도 과일과 요거트도 그냥 플레인만 먹는것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왠지 그런느낌이 가득.. 지금까지 매일 보는데 사진한장 같이 찍지를 못해서 먼저 떠나기전에 혹시 사진한번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해주어서 사진을 한방 찍고 먼저 출발했다.
처음만난 조가비마크
이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부터는 스페인 지역으로 접어들어서 뭔가 바뀔까 했는데 화살표는 적당히 있고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조가비 마크도 많이 볼수가 있었다. 조가비 마크가 가리키는 방향이 노란 화살표를 대신하기도 하는데 사실 처음보고는 이게 맞는건지 다른길을 선택하는건지 헷갈렸다. 마침 근처에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길래 천천히 따라가면서 그사람이 어느방향으로 가는지 눈치로 살피고 내가 생각한 방향이 맞는걸 확인하고 다시 제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걸으며 보니 확실히 포르투갈 길보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게되었다. 곳곳에 조가비 마크들도 있고 쉼터도 있고 무엇보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km를 표시하는 표석을 자주 볼수가 있어서 그런것 같다. 그말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도 되는것같아서 조금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길을 헤메다
길을 걸으며 한 마을을 지나는데 자판기가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순례자들을 위해서 자판기를 설치했나보다 하고 걷고있는데 설치는 되어있는데 도대체 이게 작동을 할수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당장 목이마른것도 아니어서 자판기를 구경하면서 잠시 쉬었다. 그런데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근처에 도대체 화장실이 보이지가 않았다. 결국 가방을 벗고 근처의 밭으로 가서 노상방뇨를 해버리고 말았다..
앉아서 쉬고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내 곁을 지나갔다. 가방에는 조가비 하나를 달고 지팡이와 어느 행색을 봐도 딱 순례객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가 걸음도 느린편이 아니어서 순간 경쟁자가 되어버렸다. 내가 저 할아버지는 따라잡는다! 그런데 조금 더 쉬고 출발하기로했다.
마을을 벗어나서 숲길에 접어들었는데 길이 순간 애매한 구간이 한곳 있었다.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는데 평소같으면 그냥 갔을텐데 왠 자전거 바퀴자국 하나때문에 그걸 따라갔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자전거 바퀴자국을 많이봐서 그게 맞는길인줄알고 따라갔는데 아무리 봐도 길이 점점 이상해지면서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루트와 다른것 같았다. 한 5분정도 그렇게 들어왔을쯤 아무래도 이길은 아니다 싶어서 다시 돌아서 원래대로 나왔다. 그리고 헷갈렸던 다른 길로 걸어가니 금방 순례길 마크를 다시 만날수가 있었다. 괜히 이상한길로 가서 고생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오늘 걸어야 하는길이 30km도 넘는 길이라 서둘러야 하는데 벌써 지쳐버리다니... 다시 힘내서 걷기로했다.
지루한 길의 시작
숲을 빠져나와서 언덕을 내려가는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펼쳐진 끝없는 길. 사실 끝은 있었다. 그런데 약 4km정도를 그냥 아무것도 없는 아스팔트길을 일직선으로 걸어가야한다. 저 멀리 아까 만났던 그 할아버지를 저멀리서 볼수가 있었다. 다시한번 그 할아버지를 목표로 삼고 걷기 시작했다. 그냥 쭉 이어진 아스팔트길과 근처에 공장지대가 있어서 트럭들만 자주 들락날락하는길이라 조금 위험하기도하고 무엇보다 지루했다. 정말 주변 풍경도 완전 별로여서 그냥 아무생각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중간에 한 자동차 공장을 지나는데 정말 감탄이 절로나왔다. 엄청나게 넓은 주차장에 온통 자동차들이 한가득이었다. 아마 수출을 하려고 준비중인 자동차인것 같았다. 뉴스에서 가끔 보는 인천항 같은곳에 대기중인 수출용 자동차들을 보는느낌?
일단은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해서 육교를 건넜다. 육교를 건너는데 왠 강아지 발자국에 눈에 보인다. 아마 아스팔트 깔때 채 마르기전에 강아지 한마리가 이곳을 지나가면서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나보다. 육교를 지나 다시 3km정도의 긴 아스팔트길이 시작되었다. 이길은 그래도 주변에 간간히 상가들도 보이고 국도여서 차들도 많이 지나다녀서 상대적으로 덜 지루했다. 무엇보다 이 지점이 드디어 산티아고까지 딱 100km남는 지점이다. 이제 이곳을 통과하면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2자리로 줄어든다. 길을 걸으며 옆에있는 표석을 계속 확인하면서 100km를 확인하였고 정확히 100km는 아니었지만 가장 비슷한 표석의 사진도 찍고 근처에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다
길을 걸으면서 점점 도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포리노(Porrino)라는 공장지대와 같이있는 도시였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 명동같은 도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근처 동네 가장 번화가를 지나가는것과 같았는데 차들도 없고 그냥 보행자 전용도로 같은 그냥 도심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의 행색과는 너무 다른 내모습에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이제 마을을 벗어나서 다시 시골길로 들어가야하는데 중간에 고속도로 진입지점을 지나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위험했다. 나도 원래 루트대로 간다고 간거같은데 중간에 잠깐 길을 잘못갔는지 화살표를 건너편에서 만날수가 있었다. 결국 차가 별로 없을때 무단횡단을 해서 겨우 원래 루트로 돌아갔다.
점차 시작되는 언덕길
오늘도 높은 언덕을 하나 넘어야했다. 이제 평범한 국도로 접어들자 점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 드문드문 마을이 이어져서 지루하지는 않았는데 아까 헤멘것 때문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확실히 빨리 지치는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목적지인 레돈델라(Redondela)에서 은진누나를 만나야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조금은 빨리한게 이유도 잇는것 같았다. 중간에 모스(Mos) 알베르게도 만났는데 아마 오늘 은진누나를 만나는 일정이 아니었으면 그냥 이곳에서 쉬었을것같다. 어차피 내일 걷는 길이 20km가 채 되지않는 거리여서 이곳에서 쉬고 레돈델라는 그냥 지나치는 일정을 잡으려고 했지만 약속이 있으니 만나러 가야지!!
계속 길을 오르니 언덕을 거의 다 오른것 같았다. 이제는 위로는 뭐가 안보였다. 나름 정상부분에 도착하니 Camino de Santiago 라는 글자와 조가비 마크가 새겨진 돌기둥과 의자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서 잠시 한숨을 돌리기로하고 앉아서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너무나 급한 내려막길
이제 마을을 지나는데 저 멀리 목적지인 레돈델라가 보이는것 같았다. 이제 정말 얼마남지 않았구나! 그런데 이 내려막길이 만만치가 않다. 약 5km정도 천천히 올라간 오르막길인데 그 거리를 한 몇백미터만에 한꺼번에 내려가는것 같았다. 진짜 살짝 정신놓으면 뛰어서 내려가느라 브레이크도 못잡을 정도로 내려막길 경사가 심했다.
그래도 무사히 내려와서 길을 걷는데 어째 지금쯤이면 나와야 되는 장소가 도대체 보이질 않았다. 지도상으로 계산을하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계속 걸어도 이곳이 아닌것 같은데... 라는 느낌이 계속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중간에 갈림길도 없었고 전혀 이상한구간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마지막 화살표를 보고 꽤 걸은것 같은데 화살표도 안보였고. 중간에 내가 화살표를 놓쳤을수도 있는데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오늘따라 햇볕도 쎄서 일단은 그늘에서 쉬면서 생각하기로하고 계속 걸었다. 마침 다리가 하나 보이길래 그곳 아래에서 햇볕을 피해 잠시 쉬었다. 일단 안지난것 같기도한데 너무 화살표도 안보이고 불안한 마음을 피할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 가는길로가면 어딘가는 나오니까 일단은 그냥 가기로 생각하고 조금만 더 쉬고 출발하기로했다.
자전거 순례자와의 만남
이제 쉬면서 출발하려는 찰나에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순례자가 한명 오고있었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멈추더니 갑자기 말을걸기 시작한다. 자신을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인이라고 소개한 이 순례자는 뭔가 특이했다. 내가 입은 옷 브랜드를 갑자기 묻기 시작했다. 그때당시 어차피 여행끝나고 산티아고에서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싼 등산복을 하나 구입한거라 별로 좋은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껄 말해주면서 한국브랜드라고 하니 좋냐고 묻는다. 뭐 나쁘지 않다고 말을 했더니 자기가 지금 노스페이스를 입고있는데 이게 좋다면서 노스페이스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노스페이스 자랑을 듣다가 자신도 오늘은 레돈델라에서 묶는다면서 이따 만나기로하고 헤어졌다. 아! 그럼 내가 길을 헤멘건 아니구나. 아마 오늘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서 거리개념이 사라졌나보다. 일단은 열심히 걸어가자!
은진누나와 재만남
어느정도 걸으니 다시 화살표도 만날수가 있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었구나.. 그리고 동네 길을 지나 다시 국도를 만나니 알베르게까지 약 1km가 남았다는 표시를 보았다. 그 표시가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마을입구에 들어서는데 신기한 풍경을 만났다. 사람들이 자동차 트렁크에서 쓰레기를 꺼내서 쓰레기통안에 넣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길을 걸으면서 쓰레기통은 많이 봤지만 우리나라처럼 집앞에 쓰레기를 내놓는다던지 그런 풍경은 못본것같았다. 아무래도 유럽의 문화 자체가 쓰레기를 모은다음 마을에 있는 큰 쓰레기통으로 가서 버리는게 아닐까? 쓰레기 양을 보더라도 꽤나 많은양의 쓰레기를 모아온것 같았다. 그리고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많다보니 아마 그런곳에 처리를 할것같기도하고..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새로운 풍경이 신기해보였다.
이제 마을에 들어와서 사실 화살표를 한번 더 잃어버렸다. 마을을 지나는 철길같은게 있었는데 그걸 구경하려고 걷다보니 화살표를 잃어버린것이다. 그런데 그냥 왠지 이곳일것 같은곳으로 걸어가니 신기하게 레돈델라 알베르게가 나왔다. 역시 감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렇게 호스피탈레에게 말을하고 올라가려는데 은진누나와 딱 마주쳤다! 은진누나는 버스를 타고와서 일찍왔냐고 물으니 자기도 방금 왔다고했다. 그러면서 레돈델라 초입에서 내가 걷는모습을 버스로 봤는데 너는 못봤냐면서 묻는다. 이미 마지막엔 지쳐서 무슨생각으로 걸은지도 모르겠다. 암튼 오늘 거리가 순수하게 거리만은 31km였는데 중간에 헤메기도하고 마지막쯤엔 거리감각도 잊혀져서 시간허비했는데도 6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으니 엄청 빨리걷긴 걸었나보다. 누나는 발렌사(Valenca)에서 레돈델라로 바로오는 버스편이 없어서 중간에 스페인 도시인 비고(Vigo)를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레돈델라로 향하는 버스로 갈아타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했다. 그래도 이상없이 누나를 만나고 씻고 마을산책에 나섰다.
바다를 보러 갈까?
이 마을은 바다를 볼수가 있었다. 넓은 바다까지는 아니지만 만이 형성되어 있어서 마을 구경을 하다가 바다를 보러가기로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대체 바다가 보이지가 않는다. 아마 바다까지 이어진것같은 산책로를 만났는데 그곳에서 바다가 조금 보이기는 했지만 저 멀리 잘보이는곳까지 가려면 거리가 상당할것 같았다. 해가 빨리지기때문에 그냥 멀리서 본것으로 만족하고 오늘 저녁 장을보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오늘 장은 파스타! 허접하지만 베이컨과 캔을사고 주방으로 오긴했는데 주방이 이렇게 열악할줄올랐다. 그흔한 도마와 칼도없고 겨우 후라이팬만 있는정도? 왠 플라스틱 나이프가 있길래 그걸 사용해서 겨우겨우 베이컨도썰고 피망도썰고해서 겨우 요리를 만들었다. 사실 고기를 넣을까 베이컨을 넣을까 고민했는데 고기샀으면 큰일날뻔했다. 은진누나는 단식중이라 나만 식당에서 혼자먹고 다시 올라왔다.
알베르게에서 아까 그 미국인을 만났는데 은진누나에게 아까 만났다니까 이상하지 않냐고 말을했다. 안그래도 전날 발렌사 알베르게에서 만났는데 뭔가 계속 자기자랑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거다. 나한테도 계속 노스페이스 자랑이나 하다가가고.. 그래서 그냥 그런사람인가보다 하고 넘겼다. 그나저나 러시아 친구들은 중간에 모스 알베르게쪽에서 쉬는지 이곳에는 오지 않았다. 아까 나 혼자서 경쟁했던 그 할아버지도 안보였다. 오늘은 힘든일도 많아서 밥을먹고 금방 잠이들었다.
오늘 걸은 길
투이(Tui) - 레돈델라(Redondela)
Today : 31.1km
Total : 31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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