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은진누나와 걷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해놓고 접시에 담아놓은 파스타를 마저 먹었다. 파스타 양이 꽤 많아서 그냥 1인분만 먹기도 애매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할려니 귀찮아서 조금 맛은없겠지만 그냥 데워먹기로했다. 그런데 전자렌지도 없어서 다시 후라이팬에 올려서 데운다음에 아침을 먹었다. 결국 아침도먹고 설겆이까지 하는바람에 잠이 확 깨버렸다.
짐을 다 꾸리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 어둡다. 어제는 그래도 밝았던것 같았는데 오늘은 너무 어둡다. 출발한 시각도 비슷한것 같은데 왜그러지? 그래서 사실 그럴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혹시나해서 처음으로 후레쉬를 꺼내서 비추면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해가뜨는 바다
어둠을 지나가며 계속 걷기 시작했다. 어느덧 마을 중심가는 벗어나고 변두리 마을에 있는 골목길을 걷고있었다. 날이 점점 밝아지는데 아직 해는 뜨지않고 해뜨기전 붉은 하늘과 비행기가 지나갔는지 비행 흔적들이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산길이 시작되어서 산을 오르는데 점점 해가 뜨기 시작한다. 해뜨는 장면은 못봤지만 밝아지는 느낌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높은곳에 올라가니 바다가 보였다. 이쪽이 만이 형성되어 있어서 바다가 보였다. 산에 올라 바다를 보면서 걸으니 뭔가 느낌이 색달랐다.
구불구불한 마을길
산을 넘자 아케이드(Arcade)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가이드북에서 보니 이곳에 있는 다리가 꽤 인상적이었다. 가이드북에는 알베르게는 없고 레지덴시알과 호텔만 있는거로 나와있었는데 알베르게 표지판을 보니 최근에 알베르게도 생긴것같았다. 아니면 기존 숙박업소가 알베르게로 전향했다던지.. 마을이 비고 만(Ria de Vigo)과 베르두구강(Rio Verdugo)이 만나는 곳이라서 바다와 강을 전부 볼수가 있었다. 마을분위기는 꼭 한가로운 어촌마을의 느낌이 가득했다. 날씨도 맑고 바람도 없어서 더 평화롭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무려 1795년에 지었다는 다리위에서 바다와 강을 번갈아 보면서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가니 꼬불꼬불하고 작은 골목길이 이어졌다. 지나가면서 요리를 하는 아주머니의 모습도보고 골목길을 지나가는게 신기해서 사실 언덕이었는데 별 힘든걸 못느끼고 계속 구경을 하면서 지나갔다.
할아버지와의 만남
아케이드 마을을 벗어나서 다시 산길이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물웅덩이를 지나갔지만 걷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길을 걷는데 저멀리 누군가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리봐도 순례자는 아닌것같아서 자세히 보니 한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있는것같았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강아지도 와도 인사를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천천히 우리가 올라온길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계속 산길이 시작되었다. 높진않고 완만한 산길이라 걷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물웅덩이가 간간히 있어서 힘들긴 힘들었다. 산에 다 내려와서 길을 걷는데 물이 너무불어나서 시냇물이 길을 막아버렸다. 신발을 젖게할수는 없고 저번처럼 비닐봉지를 쓰자니 비닐봉지도 없었다. 다행히 사이드쪽에 겨우겨우 건널만한곳이 있는것 같아서 먼저 길을 건넜다. 은진누나는 내가 먼저 건너가서 손을잡고 겨우 건너왔다. 이런게 혼자가아닌 여럿이 걷는 묘미가 아닐까? 도와주고 도움을 받고. 길을 걸으면서 여행을 하면서 너무 혼자만 하는걸 원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봤다. 그래도 중간중간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때마다 같이 다니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혼자가 좋다. 중간중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다니는건 좋지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가는건 아직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우체부 아주머니와 만남
산길과 들길을 지나고 작은 마을쪽으로 들어섰더니 자그마한 성당이 하나 보였다. 그곳에 들어가서 잠시 숨을 돌렸다. 마침 도장도 있길래 도장도 하나찍으면서 쉬었다. 이상하게 성당이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 많이든다. 신자도 뭐도 아니지만 교회나 절에 간것과는 또 다른 마음이다. 절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성당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사뭇 다르다. 교회는 신자가 아닌사람한테 잘 개방도 안하니 특별하게 가본기억은 군대에서 밖에 없고.
마을에 거의 다 도착하니 꼬마아이 혼자 축구를 하고있었다. 언덕길에 공을차면 경사가져서 공이 다시 내려오고 그 공을 다시 차면서 놀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옛날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을때 시간만나면 집앞에서 혼자 축구공을 가지고 벽에 공을 튕기면서 놀았는데 꼭 어렸을때 내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그 아이를 계속 보면서 걸었다.
걷고있는데 저 멀리서 노란색 옷을입은 아주머니가 스쿠터를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면서 환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처음엔 누군가했다. 우리나라에선 꼭 야쿠르트 아줌마같은 모습을 하고있었는데 은진누나에게 물어보니 우체부라고한다. 스페인의 우체국의 색깔은 노란색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간색인데 나도 우리나라에서만 있다보니 우체부는 당연히 빨간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것같다. 그렇게 신기한 모습도보고 또 응원도 받고 마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알베르게 문이 닫혔다
드디어 폰테베드라(Pontevedra) 마을입구에 도착했다. 알베르게까지 그리 멀지는 않았다. 알베르게 표지판을 보면서 드디어 쉴수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다른 알베르게처럼 조금 기다려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앉아서 짐을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문에 뭐가 붙어있어서 확인해보니 새해연휴라 그런지 1월 7일까지 휴무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뭔 날벼락이야! 마을에 알베르게는 이곳 하나뿐이어서 갑자기 힘이 쫙 빠졌다. 근처에 호텔이나 레지덴시알이 있긴했지만 바로 옆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그럼 그냥 버스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갈까? 일단 시간표나 알아보기로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안내소에서 물어보니 마침 칼다스 데 레이스(Caldas de Reis)까지 가는 버스가 10분후에 출발한다고했다. 표를 물어보니 그냥 버스에서 돈을 내면 된단다. 허름하지만 그래도 갖출건 다 갖춘 정류장이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서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기사에게 다시한번 확인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타고 순례길을 지나가다
버스가 출발하고 마을 중심부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이곳 폰테베드라도 나름 큰 도시이고 구경할게 많았는데 이렇게 지나가니 아쉽기도했다. 특히 이곳에 있는 다리도 걸어서 지나가고 싶었는데 못가는게 너무 아쉬워서 버스에서 사진만 찍었다. 레이스 마을까지는 국도로 일직선으로 이어진 곳이라서 사실 길은 엄청 단순했다. 순례길로 옆에있는 들판길을 위주로 가는데 길에서 중간중간 저기가 순례길이구나 하는 표시를 몇번 봤다. 걷지는 못하지만 풍경은 담으려고 계속 순례길 방향을 보면서 차를타고 갔다. 걸어가면 반나절을 꼬박 걸어야 도착하는 거리를 버스를타니 30분만에 도착했다. 뭔가 또 내가 왜 걸어야되지라는 생각을 잠시 가졌지만 이제 산티아고까지 얼마 안남았으니까 그냥 걷기로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대성당이 보였다. 희한하게 야자수같은 나무가 성당 주위를 감싸고 있었는데 신기해 보였다. 대성당은 뭐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 미사시간에 잠시 연다고 써있는데 은진누나고 미사를 안드려서 이따가 한번 다시와보기로하고 일단 알베르게로 향했다. 알베르게는 문이 닫혀있고 옆에 까페에 들어가서 물으니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너무 열약하다. 원래는 그냥 복도같이 보이는곳을 개조한느낌이랄까? 들어갈때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일단 짐을풀고 샤워를 했는데 계속 걱정되었다. 마치 몇일전 루비아스(Rubiaes)에서 잤을때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일단 씻고나서 마을 산책을 위해 알베르게를 나섰다.
반가운 얼굴과의 만남
알베르게를 나가서 일단은 옆에 까페에서 맥주한잔과 오렌지주스를시켰다. 오렌지주스는 은진누나가 먹기위해서 하나 시키고 나는 길을 걸었으니 맥주를 마셨다. 사실은 마실것보다는 와이파이를 쓰기위한 목적이 더 강했다. 그런데 이곳에 맥주를 시켰는데 안주로 고기완자같은게 2개가 나왔다. 이거 먹어도 되는지 의심되어서 안먹고 있으니 은진누나가 왜 안먹냐고 묻는다. 포르투갈에서는 내가 주문한 음식말고 서비스로 나오는 음식도 먹으면 돈을내고 안먹으면 돈을 안낸다고 했더니 스페인의 바에서는 음료를 시키면 타파스라고해서 작은 안주개념으로 음식이 나온단다. 먹어도 추가요금을 내지않으니 마음놓고 먹으라면서 프랑스길을 걸으면서 '바'마다 특색있는 타파스를 먹는것도 꽤 즐겁다고했다. 그렇게 간단히 요기를 하고 와이파이로 시간을 보내다가 정말 마을산책을 나섰다.
마을이 그리 크지는 않아서 돌아다니는데 물에서 왠 김이난다. 보니까 이곳이 온천으로 꽤 유명한 곳이란다. 천연 온천수가 나와서 물이 따뜻한데 사람들이 하도 몸을담구고 그래서 그런지 물에 발을 넣지 말라는 경고문이 보였다. 진짜 온천수인지 손을 가져다대니 뜨겁지는 않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것도 있는게 신기해서 구경하고 마트로 들어갔다. 일단 전자렌지는 있어서 오늘은 그냥 냉동을 데워먹기로하고 냉동과 물과 과자를 하나사고 나왔다. 알베르게로 돌아가기전 대성당을 다시 가봤지만 여전히 문이 닫혀있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안에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분명히 문 닫고 열쇠도 가지고 나왔는데 뭔가했는데 반가운 얼굴이 앉아있다! 폰테 데 리마(Ponte de Lima)에서 헤어진 이탈리아 커플을 만났다. 잘지냈냐고 했더니 아직 몸이 100% 완쾌는 아니지만 그래도 걸을만 하다고했다. 여자분은 잠깐 어디를갔고 자기는 잠깐 이곳에서 몸을 녹이는 중이란다. 아무래도 비행기 시간도있고 그래서 오늘 여기서 잠을 자지는않고 버스를타고 산티아고까지 갈꺼라고했다. 오늘은 같이 지낼수 있나했지만 곧있으면 간다니 아쉬웠지만 그래도 무사한 모습을보니 마음이 놓였다. 잠시뒤 여자분도 들어와서 같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1월 6일에 결혼식도하고 이탈리아로 간다고한다. 지금 예정대로라면 1월6일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보기로하고 다시 헤어졌다. 그렇게 만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다시만날줄 몰랐으니까 산티아고에서도 만날수 있겠지!!!
오늘 걸은 길
레돈델라(Redondela) - 칼다스 데 레이스(Caldas de Reis)
Today : 19km
Total : 33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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