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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writing/유럽여행기....Europe

130105 - 여행 23일차(산티아고 순례길 16일차, 칼다스 데 레이스 - 폰테세수레스)

일어나기 싫은 아침

어젯밤도 역시나 추위에 벌벌 떨었다. 그래도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어서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우리 말고 다른 순례자 한분이 오셨는데 별 말씀도 없으셔서 그냥 눈인사정도만 하고 말았다. 아침에 알람에 눈을 떴는데 너무 일어나기가 싫었다. 일단 한기때문에 그런지 더 침낭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어차피 오늘 걸을 거리가 많은 거리가 아니여서 또 밍기적대면서 안나가고 있다가 겨우겨우 밖으로 나가서 준비를했다.

 

이제 2일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오늘은 처음부터 엄청 억지로 걷는 느낌이 많이들었다. 요 몇일간 이런저런 핑계로 제대로 걷지 않은것도 한몫 하는것 같다. 일단은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생각때문에 그나마 힘을 내면서 걷기 시작했다. 길이나 풍경같은것도 그다지 기억에 남는 장면도 없었고 은진누나와 둘이 서로 말없이 걷기만했다. 알베르게에서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빨리 다음 알베르게까지 걸어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많이 들어있었다.

 

사냥꾼이 있나?

길을 걷다가 길가에 차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그런데 뒤에는 다른 차와 다르게 이동식 개집이랄까? 차에 메달아서 다니는 개집같은게 있었다. 사실 개 집이라기 보다는 그냥 운반목적이 크지만. 중간중간 총소리가 들리는거 봐서는 이 근처에서 누군가 또 총으로 사냥을 하는것 같다. 그런데 느낌이 그때 만난 사냥꾼들처럼 새를 잡는게 아니라 야생동물을 잡는 사냥꾼의 느낌이 강했다.

 

친절한 경찰관

중간에 또다시 물이 불어난 지역이 있어서 건너가는게 걱정되는 구간을 한번 만났지만 다행히 어제와는 다르게 큰돌들이 주변에 있어서 무사히 건널수가 있었다. 개울을 건너고 작은 마을로 들어갔는데 마치 칼다스 데 레이스(Caldas de Reis)에서 봤던 대성당과 비슷한 느낌의 성당을 만났다. 그 대성당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순수하게 건물로만 봤을때는 전혀 다른 양식이긴 했다. 신기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문이 잠겨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산길을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서 다시 국도로 걷고있었다. 꼭대기 부근에 경찰차 한대가 서있었다. 뭔가 싶기도 하고 신기해서 인사를 하고 그냥 인사만 하기는 뻘쭘해서 이쪽으로 가는 길이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도장 받을래??"

"엥? 왠도장.. 그래요!"

"잠시만 기다려봐"

그러더니 이내 차에서 정말 도장을 꺼내온다. 쓴지 조금 지났는지 날짜를 오늘 날짜에 다시 맞추더니 크레덴시알을 달라고한다. 그러더니 도장을 찍어주면서 환하게 웃는다. 짧은 영어가 가능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헤어졌다.

"부엔 까미노!"

 

쉼터의 알수없는 인형

경찰관과 헤어지고 다시 걷는길은 산길이 이어졌다. 이미 언덕은 다 올라와서 산길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사실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길이었다. 그래도 낙엽이 깔려있고 길 자체가 푹신푹신해서 걷기가 좋았다. 순례길이 아니라 그냥 등산을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내려간다 싶으면 다시 올라가고 그러다가 또 내려가고를 반복해서 살짝 짜증났다. 오르막길이 사실 힘들기때문에...

중간에 시냇물을 지나는 다리위에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침 쉴때도 되어서 잠시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쉼터에는 이곳을 지나간 많은 순례객들이 이런저런 낙서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한국어로 된 낙서로 한두개정도 보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가장 눈에 띄었던게 쉼터 윗쪽에 누가 올려놓았는지 곰인형 하나가 앉아서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침 나도 곰인형이 하나 필요해서 특히 그 곰인형을 눈여겨 보았던것같다. 쉬면서 이런저런 낙서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뒤에 다시 가방을 고쳐매고 출발했다.

 

농사짓는 아낙네

쉼터를 나서자 바로 마을이 나왔다. 원래 유럽 서남부의 기온이 높지 않다보니 1월임에도 우리나라 봄날씨보다 따뜻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슬슬 씨를 뿌리고 농사를 준비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았더니 특이한점이 보통 밭을 가는 아저씨들이 아니라 아주머니들이 그 일을 다하고있었다. 게다가 그 아주머니들이 건장해 보여서 충분히 이런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딱히 차별을 떠나서 이 모습을 보고 내가 너무 남녀차별적인 인식이 박히지 않았나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남녀평등을 외치면서도 막상 여자가 불리한 일에서는 레이디퍼스트 혹은 여성을 배려해야된다면서 그 일을 벗어나는게 느껴지는게 현실이다. 나역시 남자가 여자를 배려해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남녀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더라도 일단 육체적으로 여자보다는 남자가 기본적으로 타고난게 있으니 일은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필두로해서 무조건 남자가 무언가를 해야한다. 그러면서 보장을 받을때는 남녀평등하게 해야한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모습이 그저 아주머니들이 왜 힘들게 이런일을 한다고 생각이 들기보다는 정말 유럽은 선진화된 국가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내가 본 모습이 뭔가 사정이 있어서 특수한 경우를 본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베르게 도착

조금 더 걸으니 알베르게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오늘 목적지는 패드론(Padron)이라는 마을로 성 야고보의 시신이 도달한 마을이었는데 걷다보니 패드론과는 조금 떨어진(약 2.5km) 폰테세수레스(Pontecesures)라는 마을이었다. 알베르게 표지판이 있길래 자연스럽게 알베르게 앞에서 쉬고있었다. 아직 문은 열지 않았고 건물도 신식으로 보여서 조금 쉬다가 다시 걷기로했다. 어차피 패드론까지는 멀지 않았기때문에... 조금만 더 쉬고 출발하기로하고 앉아있었는데 호스피탈레가 왔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된거 그냥 이곳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여기서 쉬고 내일 산티아고까지 걸어도 채 30km가 안되기때문에 오늘 조금 신식숙소에서 편하게 쉬고 내일 힘들지만 마지막을 빡세게 걷기로했다. 알베르게는 최신식이었는데 아직 공유기가 없어서 와이파이는 근처 공원에서 잡았다. 다행인게 근처 공원에 무료 와이파이존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사실 중간에 이곳에서 와이파이를 잡으면서 놀다가 자리를 떠났는데 모르고 카메라를 두고 떠났다. 다행히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생각나서 다시 뒤로 돌아가는데 우리 앞에있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놓고갔다면서 우리를 부르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순간 아직 이 마을은 사람사는 정이 있다는걸 느꼈다. 지금까지 들은 스페인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 가득한 그런 마을밖에 들은게 없었는데.. 역시 우리 시골과 서울이 다른것처럼 이곳도 아직은 다른가보다.

 

바에서 파는 햄버거

씻고 잠시 마을 구경에 나섰다. 그냥 멀리서 보는 마을 풍경은 어째 공단마을의 느낌이 강했다. 큰 공단지역은 아니지만 몇몇개의 공장들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멀리는 안가고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길래 그곳에서 장을 보기로하고 일단 내려갔다. 그전에 은진누나도 주스를 먹어야하고 나도 쉴겸 근처 바를 찾았다. 그냥 마트에서 파는 음료가 아니라 프랑스길을 걸을때 스페인 바에서 수모(Zumo)라고 생과일주스를 파는곳이 많았다고한다. 이왕 먹는거 그렇게 먹는게 좋을것같다고 항상 길을 걷다가 혹은 다 걷고나서 바에서 음료를 먹었다. 근처에 바에 들어가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마침 햄버거가 있길래 은진누나에게 물어봤다. 자기도 걸으면서 바에서 만든 수제 햄버거를 몇번 먹어봤는데 맥도날드 햄버거보다 훨씬 맛있다고 극찬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하긴 했는데 고민하다가 그냥 간단하게 맥주에 나오는 타파스만 먹기로했다. 어차피 저녁은 만들어 먹을꺼 구지 무리 안하기로했다. 대신 나중에 마드리드나 다른 바에가서 꼭 수제 햄버거를 먹기로했다.

 

마을 축제???

바에서 쉰다음에 근처 대형마트에서 장을봤다. 오늘은 오랫만에 밥을 지어먹기로했다. 이곳 스페인 마트에도 우리나라 햇반같은게 있었는데 어째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햇반 2개들은게 약 1.3유로정도였고 쌀이 싼거는 0.6~0.7유로가 되었다. 거의 2배차이가 났기때문에 어차피 한끼밖에 안먹을꺼 그냥 쌀을 사기로했다. 한끼만 먹기에는 많은양의 쌀이지만 이곳에 들릴 누군가를 위해 쌀을 사고 놓고 가기로했다. 이왕 먹을꺼 맛도 햇반보다는 쌀로 내가 지어먹는게 맛있겠지!! 그리고 쌀과 포르투에서 먹었던 생 소세지와 계란 몇개를 구입했다.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재료를 두고 잠시 침대근처에서 쉬는데 뭔가 시끌벅적하다. 밖을 내다보니 뭔가 스페인 전통의상 같은데 자세히보면 성탄절을 기념하는 그런옷인것 같기도하고 조금은 애매모호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퍼레이드처럼 시끌벅적하게 알베르게앞을 지나가면서 축제를 하고있었다. 사실 축제라고 하기에는 조금 규모가 작고 애매했지만 그래도 알베르게 2층에서 몰래 훔쳐보는(?) 입장에서는 꽤 즐거운 풍경이었다.

아이들을 보며 잠시 쉬다가 저녁을 만들었다. 저녁을 만들면서 내일 아침에도 먹을걸 염두하고 조금 많이 만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주방시설도 잘되있어서 크게 걱정은 없었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요리하기는 너무 귀찮아서 오늘 다 해버리고 전자렌지에 데워먹기로했다. 오늘 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을 요리는 소세지 구이와 밥, 계란 스트럼블과 오렌지주스 한잔이다. 야채는 양파구이! 이래뵈도 꽤 맛있는 조합이다. 그렇게 나름 풍족한 저녁식사를하고 내일 먹을 아침식사는 접시로 덮어둔채로 전자렌지 옆에다가 두었다. 혹시 또 다른 순례객들이오면 이곳을 쓸지도 모르기때문에 전자렌지 안에 넣어두지는 않았다.

 

 

오늘 걸은 길

칼다스 데 레이스(Caldas de Reis) - 폰테세수레스(Pontecesures)

Today : 15.6km

Total : 353.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