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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hoto/2019 홍콩 독립 시위....free hongkong

191119 - 홍콩 이공대 앞

준비는 했지만 갑작스럽게 간 홍콩출장

위험이 어느정도 있긴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출장이어서

나름 기쁜 마음으로 방문했다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기록을 하는건

정말 하고싶어도 못하는 일이기에...


실제로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여파를 알수있었던게

나름 한국-홍콩간 비행기가 수요도 많아서 대형기로 운행중인데

절반도 아니고 1/4도 안찬 느낌이었다

탑승하라고 안내방송해서 타기 시작하는데

게이트에 줄이 거의 없다싶이 했으니


폐쇄된 침사추이역

일단 홍콩시위가 현 상황에서는

이공대를 제외하고 게릴라로 이루어져서

숙소자체를 침사추이로 잡고 주로 걸어서 이동을했다

그와중에 전날 이공대 진압작전으로 시위가 격해지고

결국 침사추이역도 임시폐쇄되어서

무정차로 지나갔다


전날 시위의 흔적

벽돌을 깨는 이유는

벽돌을 깨서 도로에 뿌려놓고 통행을 방해하기 위함이다

누가 이런 신박한 생각을 했을까..


이날도 통행은 가능했지만

여파가 꽤 많이남아있었다

다행히 마지막날에는

시위했다는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침사추이쪽은 회복이 빨리되었다



쓰러진 신호등

덕분에 원래도 무단횡단이 많긴했지만

더더욱 눈치싸움이 중요해졌다


아마 뿌려져있던 보도블럭을

아침에 일단은 임시로 도로가로 몰아넣은 느낌이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도착한 이공대

진압작전의 실패로

다음작전인 고립작전이 시행중이었다

통행은 전면 금지

취재진들도 전날 들어가있는 사람들 말고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취재진들에게 허용된 장소는 이곳뿐..

아이러니하게 어제 상황에서 내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밖에사람들과 1:1 교대가 가능했다

더이상 내부에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조치인데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들었다

물론 그때는 시기도 다르고 처해진 상황이 다르지만

취재를 위해 제한은 하지만 허용을 하는 이런모습은

한국에선 느끼지 못한 많은걸 또 생각하게 해주었다


조용한 학교

우산들과 불탄 흔적, 현수막만이

어제 치열했던 현장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구서구석 정말 많은 흔적들이 보인다

원래 근거지는 홍콩 이공대가 아니라 다른곳이었는데

시내에도 멀고 사람들의 관심도를 더더욱 끌기위해

이공대로 본거지를 옮기고 

학교 옆에홍콩섬과 연결되는 주요통로인

크로스하버터널을 봉쇄하는게 어제 시위의 주요 목표였다고 한다



그와중에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나오면서 무언가를 외치는 학생들

무슨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 자신의 신분이나 그런걸 말하는게 아닐까 싶다

혹은 자살절대 안하니까 자기죽으면 타살이다 뭐 이런걸 말하던지..

실제로 그런 정황의 사건들이 몇번 터져서

다들 자기는 절대 자살안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남기기도 했었다



아마 민주진영쪽 인사들과 변호사들

몇몇사람들이 나오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완료가 되면 경찰에 인계하는 방식인것 같았다


경찰 입장에서는 죄인이겠지만...

어쨌든 줄지어 나오는 학생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암울할 따름이었다


비록 경찰에 연행되지만

응원하는것 같은 시민들의 격려가

이들에게 어떤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도 참 복잡미묘한 감정이 많이들었다


여기서 하루종일 상황을 보며 든 생각이

나는 과연 이 상황에 저들처럼 할수 있었을까란 의문이다

몇일을 취재하며 생각해봤는데

역시 못할것같다는 생각

지금의 나라면

여기 온 사람들처럼 지지하고 응원하며

탄핵정국때 밖으로 나가 촛불을 들던정도의 소심한 저항만 했을것같다


20살 당시의 나로 돌아갔다면

아마 동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패기가 가득했을때

노동절때 집회도 가고 농활도 가고 학생운동 비스무리한걸 했던 1,2학년 시절

그때의 나라면 했을것같다

그러면서 그 당시 이미 이십대 중반이 넘어간 형 누나들이

우리와 함께했던게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대부분 지금은 일상에서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