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 밝았다.
어젯밤 2013년을 맞이하고 나름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것 같았다. 어차피 내일은 순수하게 km로만 따지면 거리가 짧아서 10시출발로 하고 9시에 일어나기로해서 9시가 다되서야 겨우 일어났다. 일어나서 씻고 나오니 은진누나가 이제서야 일어났다. 어제 2시가 넘어서 잤다고했다. 어제 샀던 냉동빠에야가 남아서 렌지에 한번 돌리고 아침으로 먹고 출발했다. 은진누나는 오늘부터 금식에 들어가기때문에 나만 먹어서 조금 미안하다. 언제 갔는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친구들도 이미 출발을 하고난 뒤였다. 다행히 알베르게가 순례길 중간에 위치해있어서 알베르게 건물 바로 옆으로 가면 순례길을 따라 갈수가 있었다. 평소보다 굉장히 늦은 아침이지만 여전히 아침이다. 1월 1일의 아침이라 그런지 다들 늦잠을 자느라 밖에 사람이 없는건지 조용한 마을. 길에 난 잡초들의 이슬과 안개만 반겨준다.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
조금 걷자마자 바로 개울이 나타난다. 원래 개울 옆에 난 뚝방같은 길을 가는길이긴 했지만 어제까지 비가 너무 많이 온탓에 강물이 불어났나보다. 바로 옆까지 물이 흘러서 돌이 미끄러운데다가 길도 좁아서 굉장히 조심했다. 비가 안오는날 갔으면 또다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면서 너무 좋았을 길이겠지만 오늘은 그냥 짜증나는 길일뿐이다. 중간중간 물이 뚝방까지 차올라서 그냥 발로 밟으며 지나가다가 은진누나가 한번은 넘어질뻔도했다. 그러다가 진짜 난관에 봉착. 길은 한곳밖에없고 앞에 길은 비때문에 물로 막혀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아스팔트길로 돌아갈까 아니면 그냥 지나갈까 고민을 하는데 은진누나에게 비닐봉지 있냐고 물으니 마침 비닐봉지가 있단다. 다행이다!!! 양발에 비닐하나씩 신고 개울을 그냥 건너기로했다. 그래도 가운데는 나름 깊어보여서 물가쪽으로 조심조심 길을 걸었다. 물을 건너고도 혹시몰라서 잠깐 신고 걸었지만 더이상 이런길은 없을것 같아서 과감하게 버려버리고 길을 나섰다. 쓰레기를 그냥 버리면 안되지만 너무 짜증나서 그냥 버려버렸다..
새를잡는 포수들
겨우겨우 빠져나오고 역시나 물이 많았지만 그래도 진흙은 없고 걸을수는 있을 정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총소리가 많이 들린다. 차가 세워져있고 가서보니 옆에 수풀에서 포수들이 총으로 새를 사냥하고 있었다. 여자분 1명과 남자분 1명이었는데 총으로 새를 잡으면 운나쁘게 걸린 새 빼고는 전부 도망갔다. 그리고는 개를 풀고 그 개가 새를 잡아오는 방식이었다. TV나 영화같은데서 가끔 보던 그장면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신기했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들을 보며 잠깐 군대생각도 하면서 다시 길을 걸었다.
오늘도 아스팔트길로
그렇게 계속 걷다가 또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원래 루트는 산길로 가는거지만 우리는 그냥 아스팔트길로갔다. 어차피 산길로 가도 아스팔트길과 만나는데다가 오늘 길 상태를 보면 아스팔트로 가는게 훨씬 수월할것 같았다. 아스팔트 길로 접어서자마자 보이는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었다. 은진누나가 밥을 못먹고 물만 먹으니 더 힘들어 하는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점점 언덕길만 연속이라 더 힘들텐데... 사실 순례길을 오면서 높은곳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연속된 산 2번을 넘은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높은 산 1개를 오른다. 정말 등산을 해야하는데 이놈의 마을 자체가 산위에 있어서 지금부터 그냥 등산이라고 생각하고 걸었다. 저 멀리 시멘트인지 철광석인지 아무튼 뭔가 채굴을 하는곳같은 산이 보이고 이런저런 산이 굉장히 많이보였다. 걸으면서 내가 오를 산은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했다. 눈앞에 보이는 산중 가장 낮게 보이는산도 힘들어 보였다.
드디어 등산의 시작
마을을 지나면서 교회앞을 지나는데 아직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마치 동화속 한장면처럼 꾸민걸 구경을 하면서 걷다가 지나치니 금새 다시 힘들어졌다. 열심히 아스팔트 올라왔더니 다시 내려막길이 조금 시작된다. 평소같으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기쁘지않다. 어차피 또 올라야하기때문에.... 마을은 꽤 높은곳까지 형성되어 있었다. 사실 마을이라고 부르기 뭐할정도로 그냥 한두채씩 집이 있긴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높은 산구석에 마을이 있는게 신기하면서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물론 익숙해졌고 나름 좋은점이 있어서 사시는 거겠지만. 그나저나 산이 아직 시작도 안되었는데 끊임없이 올라가니 이것도 참 힘들다. 오른다고 오르는데 아직 산이 시작도 안되었으니까
마을을 벗어났다고 하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을 벗어나서 드디어 등산길이 시작되었다. 안그래도 힘들어서 둘다 말없이 계속 걷기만했는데 이제는 진짜 말이 없이 걸었다. 무엇보다 산길에서 화살표가 너무 많아서 길을 잃을래야 잃을수가 없었다. 나무에 노란색 화살표를 칠하는게 과연 괜찮을까도 생각되었지만 일단은 그저 고마웠다.
아이폰 GPS에 놀라다
은진누나는 아이폰에 탑재된 지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안드로이드의 구글지도 같은경우는 일정부분 지도를 확인하면 그 데이터가 저장되어서 인터넷이 끊어져도 저장된 데이터 부분은 자세하게 확인을 할수가있었다. 문제는 그 지도를 보고 내가 있는 방향을 잡고 어딘지 파악을 해야하는것. 산을 오르는데 소나기가 내려서 또다시 버스정류장에 피했다. 참 신기하게 버스정류장은 그래도 많이 보인다. 버스정류장에서 쉬면서 아이폰 gps를 보니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고 데이터를 차단해도 gps는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다. 그래서 구글지도와 마찬가지로 어느정도 지도정보 데이터가 있는데다가 gps까지 연동되어서 지금 내가 어느방향으로 걷고있는지 어느쯤인지까지 다 나왔다. 안드로이드는 왜 지원을 안하는거지? 내가 못하는건가? 이렇게 아이폰 gps성능에 감탄하는 사이에 소나기가 어느정도 그쳐서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정상 도착!
그리고는 다시 말없이 걸었다. 말을 하기 싫은것보다 힘들어서 말이 안나온다. 이렇게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니 마치 군대에서 행군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닥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련이 되어있어서 나름 괜찮았다. 숨이 가쁘고 힘이든건 마찬가지이지만 '아 죽고싶다' '왜 이딴짓을 하지?' '그냥 포기하고싶다' 이런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 '왜 이딴짓을 하지?' 라는 생각은 사실 조금했다. 은진누나도 이미 프랑스길을 걷고온데다 첫날 피레네산맥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묵묵히 길을 걸었다. 산을 오르는데 'A15M'이라는 표시를 봤다. 내가 참고하는 무수리님의 블로그에서 무수리님이 이걸보고 15m앞에 알베르게가 있다고 해석했는데 속았다고 하는걸 보고 다시 생각을 해봤다. 일단 그 표시를 보고 걸었는데 도대체 알베르게가 안보인다. 그럼 15m가 아니라 15minute 즉 15분 걸으면 나오려나? 그런데 가이드북에도 산에는 알베르게가 표시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한번 보니 A가 알베르게의 A가 아니라 정상(Alto)의 A인것같았다. 그리고 15m은 15m보단 15분이 맞는것 같았고. 정상이 언제나오나 이소리만 계속하면서 걷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사진정보를보니 역시 정상까지 15분이 맞는 해석인것 같았다.
정상에 도착해서 정말 환호를 지르면서 잠시 쉬었다. 저 멀리 하늘을 보니 날씨가 점점 맑아지고 있는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래를 보니 우리가 정말 많이 올라오긴 올라온것 같았다. 정상에 왠 집이 한채 있었는데 무슨 집인지는 모르겠다. 앉아서 쉬려고 했지만 나무가 젖어있어서 그냥 마른 돌위에서 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했다.
오르막길 보다는 내려막길이 위험하다
다들 등산은 오르막길보다는 내려막길이 힘들다고한다. 내려가면서 제동도 잘해야하고 특히 무거운 가방을 메었을때는 제대로 컨트롤이 안될때가 많으니까. 게다가 원래 그런길인지 비때문에 이런길이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루트로 물이 흐른다. 그래서 마치 계곡을 지나는것처럼 그냥 물과함께 내려갔다. 그래서 더 조심조심 하면서 내려가게 되었다. 산을 오르면서도 많이 봤지만 중간중간 추모를하는 십자가가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돌탑들도 많이 보였다. 아마 이 길을 걸으면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게 아닐까? 산이 그래도 높다보니 걷다가 힘들어서 어떤 이유로 돌아가신 분들이 있나보다. 지나가면서 그 십자가들을 지날때마다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며 이동했다. 산에 내려가는 도중에도 물때문에 길이 엉망인곳도 꽤나 많았다. 그래도 확실히 혼자서 갈때보단 둘이서 가고, 그래도 남자라고 책임감도 생기는것 같았다. 여행은 혼자가 좋지만 걷는건 둘이상이 좋은것같다. 알게모르게 의지가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알베르게 도착!!
산에서 어느정도 내려오니 날씨가 엄청 맑아졌다. 하늘엔 먹구름보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훨씬 많았고 햇볕도 비추었다. 게다가 산을 넘었으니 이제 알베르게가 얼마 안남은거니까 괜시리 더 좋아졌다. 중간에 강아지도 만나고 기분좋게 걷다보니 알베르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시를 발견했다. 누나랑 둘이 좋아서 더 힘내서 걷는데 도대체 안나온다. 분명 조금만 걸으면 나온다고 했는데... 이게 그 표시를 안봤으면 기대를 안했겠지만 괜히 그걸 보니 더 기대를해서 이런가보다. 1.3km밖에 안남았다고 했었지만 체감상으로는 약 2km정도를 걸은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있다.. 혹시나해서 문을 열어보니 들어갈수 있었다. 호스피탈레는 전혀 보이지않고 그래도 잘수있는 시설하고 물은 잘 나왔다. 어쩔수 없이 오늘은 여기서 잠을 자기로했다. 건물이 습한곳에 있다보니 건물벽에 곰팡이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그래도 2층은 햇볕을 받는곳이라 곰팡이가 조금 덜할것 같아서 그곳에 자리를잡고 씻고 식사를 하기위해 나섰다.
혼자먹는 식사
알베르게 근처에 순례자 메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오늘은 1월1일! 평소와 다른 날이기 때문에 문을 닫았다. 31일부터 2일까지 쉰다는 안내문이 친절하게 붙어있다. 이대로 굶어야하나.. 오늘은 절대 굶고싶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근처에 또다른 레스토랑이 있다고해서 일단 그곳까지 가기로했다. 중간에 정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문을 열어서 만약 지금가는 레스토랑도 문을 안열었으면 거기서 간단하게 요기거리만 사기로하고 일단 레스토랑까지 갔다. 문제는 그곳까지만 한 500m정도. 물론 가방이 없긴했지만 긴장이 풀린탓에 발이 더 아팠다. 겨우겨우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다행히 문은 열었다. 앉아서 주문을 하려고하는데 도대체가 말이 안통한다. 그래도 어리버리했지만 나름 의사소통은 할수있을 정도의 포르투갈어 실력이 되었는데 오른은 도대체 통하지가 않는다. 바디랭귀지 섞어가면서 겨우겨우 말이 통해서 식사를 주문했다. 당연히 고기!!!! 누나는 금식이라 그냥 차 한잔만 시켰는데 차라기보다는 그냥 뜨거운 물에 가까웠다. 주전자와 찻잔이 나왔는데 주전자 안에는 뜨거운물과 레몬이 한개 통채로 들어가있었다. 물만먹고 이렇게 버티다니 정말 괜찮을까 걱정이 되면서 나혼자 밥을 먹으려니 너무 미안했다. 누나가 괜찮다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미안해서 빨리 먹고 나왔다.
다먹고 계산을하고 나오면서 중간에 마트에 들려서 생수를 한통샀다. 먹고 남으면 가지고 다니는 페트병에 채워넣으면 되니까. 사실 매일 물을 1유로정도 사면 돈이 아깝지만 그래도 둘이 같이 큰거하나사고 나누면되니 그래도 괜찮았다. 물밖에 못먹는데 그것마저 수돗물로 먹으면 안되는것도 있었고. 그나저나 돌아가면서 보는 석양이 너무나 아름답다.
다시만난 러시아 친구들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 러시아 친구을 만났다. 아니 출발은 우리보다 빨리했으면서 왜이렇게 늦게도착한거야? 행세를보니 딱 방금 도착한것 같았다. 구멍가게가 있는걸 알려주면서 우리는 먼저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얘네들은 어디에 자리잡았나 봤더니 1층 엄청 어둡고 습한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라디에이터가있다. 이럴줄 알았으면 라디에이터 가지고 2층으로 올라왔을텐데 ㅠㅠ 오늘밤은 정말 춥겠구나.. 아쉽지만 뺏을수는없고 그냥 2층으로 올라가서 쉬었다. 올라와서 조금 쉬는데 뭔가 요리를 하는지 시끄럽고 기름냄새도 올라왔다. 뭔가를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피곤해서 움직일 힘도 없어서 소리만 들었다. 잠결에 호스피탈레가 방문하고 간것같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추울것 같아서 일찍 잠들었다.
오늘 걸은 길
폰테 데 리마(Ponte de Lima) - 루비아스(Rubiaes)
Today : 18.1km
Total : 268.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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