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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writing/유럽여행기....Europe

121217 - 여행 4일차(산티아고 순례길 1일차, 리스본 - 아르헨드라)

순례길 출발 아침

마침내 순례길 아침날이 밝았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고 순례길을 갈 준비를 했다. 원래는 리스본 대성당에서 부터 시작하는 루트이지만 오늘은 첫날인만큼 조금만 걷기로하고 느긋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 지냈던 숙소사진도 찍고, 사람들하고 인사도했다. 아침을 먹고 씻고 나오니 히로와 타이키가 갈 준비를 하고있다. 그런데 얘네들도 떠날 준비를 하는것 같아서 물어봤다

"너네도 오늘 떠나?? 이리나랑 신트라 간다고 하지 안았어?"

"응 일단 짐만 맡기고 오늘 신트라 갔다가와서 마드리드로 이동할꺼야"

"응? 몇시 비행기인데?"

"저녁 12시"

"와... 오늘 보는게 마지막이구나. 다음엔 어디가"

"음 이곳저곳갔다가... 베네치아도 가는데.."

"아 베네치아! 나도 이시기쯤 가는데!!"

"우리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볼수있으면 보자. 연락해!!"

"그래!! 다음에 보자"

말을 마치고 나름 뜨거운 포옹을 한뒤 친구들하고 헤어졌다. 2명의 일본인 친구들은 그렇게 신트라를 향해서 출발했고 나는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약 한달여간 걸으면서 입을 옷으로 갈아입고 등산복 바지도입고 만만의 준비를 마쳤다. 뭔가 살짝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준비 끝! 왠지 점심을 못먹을것 같아서 아침식사때 삶은달걀 2개를 챙겨놓고 물도 가득 채워넣었다. 이제 출발인가..

출발하기전 리셉션에 있는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스탭이 리스본 도착 첫날 새벽에 날 반겨준 스탭이다. 뭔가 오묘한 기분...

"드디어 출발하는거야?"

"응! 이제 산티아고 까지 걸어야지!!"

"다치지말고 몸조심해!"

그렇게 여자스탭과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마침 교대시간이라 남자스탭이 말을건다.

"그럼 최종 목적지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응 거기까지 가려고"

"그러면 잠깐만...(종이를 가지고 오더니 어떤 사람 이름을 적어준다.) 거기서 이 사람을 찾아가봐"

"정말 고마워!! 꼭 가야겠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했는데 도대체 저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사람이름 하나가지고 어떻게 찾으라는건지.. 그리고 사실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못알아 들어서 그냥 알겠다고만 하고 고맙다고 대답만 했다. 그런데도 왠지 그 스탭의 마음이 느껴지는것 같아서 지갑속에 간직해두고 순례길이 아닌 유럽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지갑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컴퓨터를 하던 로사라는 친구가 말을건다. 바베큐파티날 같이 놀았던 런던에서 온 친구이다.

"이제 출발하는거야?"

"응 오늘부터 시작이야!"

"몸조심하고.. 다른게 아니라 내가 런던에서 다큐멘터리 PD인데 너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워서. 이메일좀 알려줘"

"아진짜?? (아이폰에 적어주었다.) 여기있어!"

"꼭 도착해서 연락줘!!"

"응!! 나중에 연락할께"

다큐멘터리 PD라니.. 물론 연락이 안올걸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일단은 PD건 카메라맨이건 떠나서 한명의 소중한 친구를 얻은거니까. 그렇게 인사를하고 호스텔 문을 나서는데 뭔가 뭉클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시작은 메트로를 타고

어제 산 viva카드가 24시간권이라서 아직도 유효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루트를 보고 나는 시작을 바스코다가마 다리로 잡았다. 메트로로 갈 수 있는 루트상 순례길과 가장 근접한 경로였다. 호스텔을 나서고 불과 3일이지만 내 동네처럼 내 집처럼 들락날락했던 알파마 지구를 떠나면서 계속 생각에 잠겼다. 노란 28번 트램도 이제는 못보겠구나. 어차피 메트로를 타러 가는길이기 때문에 그래도 순례길의 시작점인 리스본 대성당에 다시 들렸다. 비록 신자도 아니지만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걷는거니까. 잠깐 순례길을 위한 다짐을 하고 크레덴시알에 첫번째 아니 두번째 도장을 받았다.

메트로역에 도착해서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스본 도착 첫날 그렇게 헤메던 이곳. 이제는 뭐 익숙하지만 그때는 왜그렇게 헤맷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해보다가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메트로를타고 약 30분쯤 갔을까? 내가 내려야 할 오리엔트역에 도착했다. 이곳도 어찌보면 신 시가지라고 할수있는데 바스코 다 가마 다리와 탑도있고 엄청나게큰 수족관도있고 뭔가 같은 리스본이지만 다른느낌이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메트로에서 올라와서 지도를 한번 보고 일단은 순례길과 만나야하니 해안가까지 걷기 시작했다.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

걷기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바스코다가마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옆으로는 엄청나게 큰 수영장처럼 보이는 건물들도 있고, 마치 독일과같은 세련된 유럽도시에 온 느낌이었다. 탑도 가보고 싶고 구경도 하고싶지만 오늘은 출발이 늦어서 더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었기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일단은 해안가 끝까지 와서 해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지도상 해안가를 따라 걷는길이 순례길이 맞았기 때문에 고민없이 그냥 걸었다.

한 5분정도 걷기 시작하자 드디어 첫번째 노란색 화살표를 발견했다!!! 이제 정말 순례길의 시작임을 몸소 느끼는 화살표였다. 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하겠지? 첫날인 만큼 다시 의욕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계속 바스코다가마 다리를 보면서 걸었는데 이게 얼마나긴지 끝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인천대교도 길다고 하지만 이게 더 긴것처럼 보였다.

걸으면서 잠깐 뒤를 돌아봤는데 왠지 순례자인것 같아보이는 부부가 뒤따라 오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나타난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는 루트가 일반적인 산책코스도 아니었기때문에 복장으로보나 느낌상 순례자의 느낌이었다. 조금 천천히 걸으며 말을걸을까 아니면 그냥 갈까 고민하다가 만약 순례자면 오늘 숙소에서 만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일단은 그냥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부부와는 더이상 만나지 않았다.

약 30분쯤 걸었을까? 사카벰을 조금 못가서 왠 대형 천막이 쳐져있었다. 우리나라에선 한번도 못보고 영화에서나 보던 대형 트레일러들이 엄청나게 줄지어 서있어서 뭔가싶으면서 걸었는데 알고보니 서커스 공연장이었다. 유럽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것 같았는데 뭔가 신기했다. 유럽이니까 가능하구나 싶으면서 왠지 이런 문화가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하고싶어도 삼면이 바다이고 위로는 휴전선이라 차로는 어디 갈수가없다. 작은건 사실이지만 작은게 불만인게 아니라 작기때문에 우리는 모르는 그런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

사카벰에 도착해서는 이제 본격적인 순례길다운 흙길로 접어들었다. 강을 따라 걷는 흙길이었는데 지금까지는 테주강을 따라 걷는 산책로 느낌의 길과 그냥 아스팔트 도로였다면 이제부터는 그냥 강옆에 길만 나있는 흙길이다.

(지금에서야 지도보면서 다시보는데 내가 본건 바다가 아니라 강이었다... 신트라에 들렸다가 호까곶에서 본 그건 바다였지만 아침마다 호스텔에서 보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벨렘탑에서 리스본 발견 기념비에서 본 그곳은 그냥 바다같은 강이었다. 완전 무식했네... 고치기는 귀찮고 이제 강인걸 알았으니까 됐지뭐...........;;;;)

일단은 흙길이 싫은건 아닌데 사실 리스본 도착해서 오늘까지 계속 비가왔기때문에 땅이 젖어있는게 문제였다. 흙길이라 질척질척하고 튀기고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걷기 한시간정도 지났는데 가방이 너무 불편하다. 일반적으로 그냥 가방만 멘것이 아니라 멍청하게 보조가방까지 메어서 가방이 2개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DSLR까지 들고다녀서 완전 그냥 웃긴모습이랄까? 등에는 침낭까지 결속된 큰 가방에 한쪽어깨는 보조가방 반대쪽 어깨는 DSLR까지.. 지금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산티아고까지 걸었을까도 신기하다. 사실 보조가방에 든건 물과 가이드북, 갤럭시 노트 10.1, 망원렌즈가 전부였다. 무엇보다 노트 10.1이 컸는데 그렇다고 가방에 넣어서 필요할때마다 꺼내기도 귀찮고 그럼 보조가방을 들고다녀야 되는데 그래서 그냥 물과 가이드북도 넣었고 혹시몰라서 렌즈까지 넣어버렸다. 그리고 이 렌즈는 정말 아닌것 같아서 저녁에 짐싸면서 가방에 다시 짱박아 버린다.

걷다보니 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야생으로 풀어진 말인지 고삐도 안묶여있다. 그리고 똥은 또 얼마나 싸질러 놓은건지 바닥에 똥도 굉장히 많아서 똥피하는데 애먹었다. 똥피하고 흙탕물피하고 진흙길까지 피하고 나참 이게 무슨짓인지.. 이제 걷기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뭔가 후회가 밀려온다.

하늘위로는 비행기가 가끔 지나갔는데 꽤 낮게날아서 잠깐 쉴때 지도를보니 이곳이 공항 근처였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착륙하는 활주로가 내가 지나가는 길을 지나가는것 같았다. 잠깐 비행기를 보면서 걷다가 흙탕물에 빠진뻔했지만 다행히 빠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큰 웅덩이가 가끔 있었지만 사이드로 지나가면 되어서 괜찮았다. 그것보다는 신발에 진흙이 잔뜩묻어서 왠지 걷는데 더 힘든것같은 느낌이 짜증났다.

 

지금까지 길은 엄청 순탄한 길이었다?!

길고 긴 뚝방길을 따라 걷고 이제는 조금 순탄한 길이 나오나 싶었는데 뭔가 불길하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건지 나뭇가지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겨우겨우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웅덩이들. 그래도 진흙과 함께있는 웅덩이가 아니라 돌길에 고여있는 웅덩이라서 이정도면 껌이라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엄청난 웅덩이 무덤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누가 트랙터로 지나갔는지 엄청나게 큰 바퀴자국이 선명하고 바닥은 바퀴자국때문에 잔뜩 패였는데 하필이면 진흙이라서 게다가 비도와서 물은 고여있고 질척질척해서 어디 밟기도 애매한상황. 그래도 겨우겨우 길을 찾아서 지나면 또다른 웅덩이가 나오고 아주 지랄이었다. 속으로만이 아니라 입으로도 쌍욕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이건 진짜 더이상 갈수없겠다 싶은 길이 등장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우리가 등산할때 산악회에서 리본을 묶는것처럼 주황색 리본이 묶여있었다. 느낌은 그냥 트랙터가 다니는길을 표시한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어차피 길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믿어보자는 식으로 그 길을 따라갔더니 다행이 잠시나마 괜찮은 길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안가서 완전 힘든 길을 마주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다 쉬운길로 느껴질정도로 엄청난 길. 이건 빠지지 않고는 도저히 건널수가 없는 길이다. 딱히 돌아갈만한 길도 보이지가 않았다. 고민고민하다가 최대한 피해를 안입을것같은 길로 조심스럽게 걸었지만 다리가 빠지고 말았다. 이제 첫날인데 신발이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피할때 안빠지겠다고 점프를 한게 충격을 줘서 렌즈캡이 빠져서 진흙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말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것은 렌즈와 닫는 부분이 아니라 겉으로 닿아서 조금만 씻어주면 되었다. 정말 아깝지만 마실물로 대충씻고 렌즈융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생각해보니 휴지도 안가지고 다녔구나.....

 

첫번째 휴식

진짜진짜 힘들고힘들게 진흙구덩이를 빠져나오니 잠깐 아스팔트길이 펼쳐졌다. 처음 걸었을 페이스로 걸었으면 1시간정도 걸렸을 거리를 한 1.5배? 2배정도는 더 걸려서 걸은것같다. 마침 또 앉아있을만한 공간이 있어서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중간중간 잠깐 서서 쉬기는 했지만 앉아서는 한번도 안쉬었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것도 있지만 앉아서 쉴만한 공간조차 없어서 힘들어도 참고 걸었었다. 앉아서 아침에 챙긴 삶은달걀 1개와 물로 점심을 때웠다. 이건 뭐 사먹을만한 공간도없고 답이 안나오는 곳이다. 앉아서 20분정도 쉬면서 숨도 돌리고 가이드북으로 위치도 확인하고 노트를 이용해서 구글맵으로 위치도 다시한번 확인했다. 구글맵이 와이파이를 잡지않아도 기존에 봤던 지역은 어느정도 저장을 해놓아서 데이터없이 그냥 볼수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계속 다니면서 전날 숙소에서 다음 목적지까지 지도로 한번 자세히 둘러보고 지도를 저장시키면서 중간중간 쉬면서 위치를 확인하니까 엄청 편했다.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가방을 메고 출발했다. 확실히 오랫동안 쉬다가 출발해서 그런지 기운이 났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아스팔트길이 점점 펼쳐져서 걷기도 편했다. 원래는 흙길이 걷기가 편한길이지만 비때문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길은 오히려 아스팔트길보다 훨씬 걷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지금은 신발 안에도 진흙이 약간 들어간것 같아서 찝찝하고 빨리 신발을 벗고싶은 생각만 들었다.

아스팔트길을 만나면서 저 멀리 도시가 보이고 옆에도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없었다. 차도 그렇게 많지가 않은 도로여서 오히려 좀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지나가다가 바닥에 떨어진 맥도날드 봉지를 보고 먹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뜩이나 밥도 제대로 못먹어서 배고픈데.....

 

또 다른 난관

그냥 걸으면서 아무생각이 없이 걸었다. 중간중간 힘들다... 저기는 어디일까..? 시작부터 이런데 내일은 잘 할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하면서 걷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생각은 안했다. 사실 시작한 이유가 전역하고 이런저런 생각할 일들도 많고 걸으면서 나 자신과 싸우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다짐하기 위해서 걷기 시작했다. 왜 꼭 이길이냐면 아무이유가 없다. 그냥 걷고 싶었다. 혹자는 우리나라도 다 못가보는 것들이 외국에만 나가려고 한다고 비판을 하고, 유명하다니까 다들 유럽에와서 순례길을 걸으면 뭐가 되는냥 걷는다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선 이게 유럽이던 아프리카던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단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고 싶었고, 왠만하면 남들이 잘 안가는 길을 가고싶었고, 내 여행 루트상 맞는곳이 포르투갈 길이기 때문에 포르투갈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첫날이라 그런지 그냥 마냥 힘들기만 했다.

이제 슬슬 아스팔트에 적응했을쯤 다시 흙길이 나타났다. 아까보다는 괜찮아서 좋다고 가고있는데 또다시 엄청난 물웅덩이가 등장했다. 이젠 돌아갈 길도없어서 이길도 그냥 부딪혀야된다. 게다가 양옆에는 나무들이 둘러쌓여 있어서 어디 밟을만한곳도 보이지가 않는다. 겨우겨우 웅덩이 옆에 나무들을 밟으며 지나갔지만 역시 살짝 빠지고 가방은 긁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첫날부터 왜이러나 싶지만 이게 순례길이거니.. 하고 그냥 걸었다. 나중에 와서 생각한거지만 차라리 첫날 이러길 다행이다. 순례길을 걸었던 날중 첫날이 제일 힘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조금 힘든일이 나타나도 '첫날에도 걸었는데!' 라는 생각으로 다 이겨낼수가 있었다.

 

이제는 화살표에 적응이되다.

처음에는 노란색 화살표가 잘 적응이 안되었지만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도로와 강 옆 뚝방길이 아닌 주택가를 지나면서 화살표 표시가 좀더 잘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화살표가 어디있나 왜 많이 걸은것 같은데 안나오나 불안감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화살표를 믿고 그냥 걷기로했다.

그런데 확실히 처음이라 불안했는지 한 20여분 걸은것 같은데 도대체 화살표가 나오질 않았다. 지도를 보면서 비교해봐도 여기가 맞는데 화살표는 안나오고, 시간상 지났어야 할길인데 내가 걷고있는 느낌이라 불안했다. 지났을지도 아니 길을 잘못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몸도 힘들어서 일단 쉬면서 천천히 알아보기로 했다. 차도 옆으로 걷는중이라 쉴곳을 찾으며 걷고있는데 조그마한 공터가 나와서 그곳에 짐을 풀고 앉았다.

앉아서 쉬면서 2번째 달걀을 먹었다. 진짜 아침에 이걸 안챙겨 왔으면 어쩔뻔했어. 물은 이제 거의 바닥을 보여서 아껴먹어야 한다. 그 흔한 마트도 보이지가 않아서 물을 계속 아껴먹었다. 하루종일 걸으면서 500ml 페트병 하나로 될리가 없지. 다먹고 지도를 보면서 길을 비교해보니 길은 맞게 가고있는데 아직 내가 생각한것보다는 덜 온것 같았다. 일단은 쉬다가 그냥 믿고 걷기로했다. 어떻게 되든 길은 나오겠지뭐!

 

점점 끝이 보인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서 노란색 화살표를 다시 발견했다. 역시 내가 제대로 온게 맞았다. 그렇게 계속 걷다보니 원래 쉬려고 했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살짝 고민을한게 지도상 국도를 따라가면 원래 루트보다는 살짝 빨리갈수가 있다. 그런데 차들이 빨리다녀서 위험하고 원래 루트대로 가려니 돌아가는 데다가 흙길을 지나는 구간이라(가이드북에 흙길인지 아스팔트인지 구분이 되어있었다.) 또 그고생을 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그냥 루트로 가기로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종일 난리났는데 마지막인데 참아야지!

철길을 건너는 구간이라 육교를 건너고 조금 걸으니 길이 나오는데 철문으로 막혀있다. 그런데 노란색 화살표는 그쪽을 향하는 이상한상황.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었지만 혹시 몰라서 문앞까지는 걸어가보기로 했다. 문앞까지 걸어가니 옆으로 살짝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놓았다. 아마 사유지라서 순례자들을 위해서 개방은 해놓았지만 차량 출입은 통제를 하나보다. 그런데 이곳도 비오고 트럭이 지나갔는지 흙구덩이에 물이 장난아니다. 그래도 아까 그것들에 비하면 이거는 너무너무 편한길이다. 벌써 적응을 했나보다. 근처에 비행장이 있는지 옆으로는 비행기가 지나다녔다. 농약을 치는 비행기인지 그냥 민간 비행기인지는 몰랐지만 한참을 비행기를 보면서 걸었다. 이제 날이 슬슬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이곳도 그냥 흙길이고 아무것도 없어서 앉아서 쉴수가 없었다. 평소같으면 그냥 앉았겠지만 그놈의 비때문에 웅덩이가 생기고 축축해서 전혀 앉을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왠 돌을 발견해서 앉을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앉았다. 사실 쉰지도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고 숙소까지 30분정도만 걸으면 되지만 지금 안쉬면 너무 힘들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피곤했던걸까? 앉아서 쉬는데 갑자기 코피가 나왔다. 휴지는 없어서 피는 멈추지 않지.... 겨우겨우 지혈해서 피가 멈췄다. 그리고 얼마남지않은 물을 다 마셨다. 이제 숙소도 얼마 안남았으니까 일단 다 먹기로 했다. 피만 지혈하고 물을먹고 다시 출발!

 

끝이 끝이 아니다

조금 걸으니 다시 아스팔트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찻길과 같이 걷기 시작했다. 이제 역이 등장하면 정말 숙소에 가까워진거라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알베르카역에 도착했는데 역 근처에 비행 박물관같은게 있었다. 이곳이 비행기로 유명한 곳인가? 일단 기찻길을 다시 건너야 하기때문에 역을 지나는데 순간 뭔가 울컥했다. 오늘 하루 이렇게 개고생하면서 걸었는데 지금 여기서 기차타면 리스본의 편안한 숙소와 친절한 사람들을 30분도 안되어서 만날수가 있다니. 그렇지만 걷기 시작했으니 다시 걷기로 했다.

역을 건너서 나오니 마을 주택가였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그들도 내가 낯설은지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눈도 안마주치고 빨리빨리 걸었다. 드디어 숙소인 봄베이로스(소방서)에 도착했다. 포르투갈길의 특징이기도 한데, 사실 포르투갈길은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200km 조금 넘는 길이 유명하다. 10일 이내로 도착할수도 있는 장점도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만큼 시설들도 잘 갖추어져있다. 리스본에서부터 출발하는 길은 사람들도 많이 없는 편이여서 숙소가 잘 갖추어지지 않아서 포르투갈어로 봄베이로스라고 불리는 소방서에서 순례자들을 재워준다. 물론 순례자들은 순례증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순례증이 있어야 재워주고 도장도 찍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실 내가 오기전에 리스본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으신 분의 후기를 읽어보고 참고를 하면서 걸었는데 그분도 이곳 알베르카 봄베이로스에서는 거절을 당했다고 쓰여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물어보기로했다. 소방서에 도착하니 여직원이 맞이했는데 내가 영어로 물어보니 당황하면서 헤맨다. 그러다가 많이 잡아도 18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 소방대원 복을입고 나왔는데 다행히 영어가 조금 되는 소년이였다.

"나 순례자인데 혹시 여기서 재워줄수있어?"

"음..미안한데 여기는 재워줄수가 없고 저쪽으로 좀만가면 아르헨드라가 나오는데 그곳 봄베이로스에선 재워줄꺼야"

"얼마나 걸려? 멀지않아?"

"별로 안걸려. 1마일정도? 30분정도면 도착할수 있을껄?"

"그래 고마워"

이렇게 말은 하면서 소방서를 떠나긴 했지만 불안불안했다. 사실 근처에 숙소가 있는걸 알고 지도상으로도 5km정도 되는거리인데 30분정도면 갈꺼라고? 그런데 아까도 지도만 믿고 걸었다가 많이걷기도 했으니까 이번엔 지도가 좀더 많은 거리를 표시했다고 믿으면서 그냥 걷기로했다. 대신 조금이라도 시간단축을 하려고 위험하지만 국도로 다니기로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

국도로 가긴했지만 길가에 어느정도 공간도 있고 퇴근시간이 되서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차들도 막혀서 천천히 달렸다. 그러다가 다시 걸을 생각을 하니 너무 토나오고 목마르고 힘들고 별 잡생각이 다들었다. 마침 주유소가 있길래 주유소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서 물 한병을 샀다. 0.8유로에 500ml 페트병 물 하나를 사는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지만 당장 목이마르니 어쩔수가 없었다.

지나가면서 닭들도 보고 공장도 보고 이런저런 구경을 하면서 오로지 쉴수있는 아르헨드라 표지만 보고 걸었다. 걷다보니 이미 해는 져서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차들도 전부 라이트를 켜고 달리고 있었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어떤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걷는 사람들이 한두명씩 있었다. 정말 이때부터는 '언제도착하지?' 라는 생각만 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리고 50분쯤 걸었을까? 겨우겨우 아르헨드라에 도착했다. 일단 마을은 도착했고 바로 봄베이로스 표지판을 보고 봄베이로스부터 쳐들어갔다. 소방서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어서 기웃기웃하다가 한분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쉬고갈수 있을까요?"

"......."

아마도 영어를 못하는지 역시 당황했다. 그러고는 고민하더니 잠잘꺼냐는 표시로 손을 포개고 얼굴 옆에 가져다대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맞다는 제스쳐를 보내자 웃으면서 따라오란다. 그리고는 일단 순례증에 도장을 찍어주고 내가 잘곳을 알려줬다. 침대도있고 이불도 있는 훌륭한곳이다! 아마도 대원들이 평소에도 쉬는 곳인가보다. 그리고는 샤워장도 안내해주고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전부 바디랭귀지로. 정말 너무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나도 바디랭귀지로 보여주고 일단 방에다가 짐을 풀었다.

드디어 쉴수 있다니!!!!!! 일단 잠깐 멍때리면서 앉아있다가 바로 샤워를 했다. 이 찝찝한 양말부터 벗어버리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슬리퍼를 따로 챙기질 않아서 어쨌든 이신발을 계속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샤워장에 와서 일단 나보다 신발부터 씻기 시작했다. 이놈의 진흙들을 다 털어내버리고 싶었다. 다행히 양말의 찝찝함은 주로 땀 때문이었고 진흙은 발목쪽에만 조금 묻어있었다. 비싸긴해도 방수되는 고어텍스 등산화를 사길 잘한것같다. 신발도 씻고 내몸을 씻으니 너무 개운했다. 그리고 아까 급하게 지혈한 코피도 다시 닦으면서 휴지로 코피를 막았는데 휴지를 3번이나 갈 정도로 피가 많이났다.(아까 휴지를 안챙겼다고 쓴거같은데 보조가방에 안챙기고 가방에는 챙겼었다. 그런데 아예 레인커버를 씌우고 다니다보니 가방에서 빼기가 너무 귀찮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밤

씻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누워서 쉬었다. 배고픈건 둘째치고 일단 누워있고 싶어서 누워있었다. 그리고는 배가고파서 뭘좀 먹으려고 길을 나섰다. 작은 마을이라 뭔가 많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것 있을것 같았다. 마을 광장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날 신기하게 쳐다본다. 왠 이상한 동양인이 등산화신고 쫄래쫄래 돌아다니니 이상하게 보일만도 하지. 아직은 이런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용기도 없어서 음식점에 들어가서 뭔가를 먹고싶었지만 차마 먹을수가 없었다. 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란....

결국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해결하기로하고 근처 슈퍼로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도 먹을 사과까지 사과 4개와 콜라를 사고 빵집에서 빵 3개를 샀다. 힘들어서 그런지 그냥 빨리 자고싶다는 생각만 들고 이미 배고프고 그런 감각은 조금 잊은것 같았다. 그래도 살아야하니 사과로 비타민을 채우고 콜라로 목마름도 채우고 빵으로 배고픔도 채웠다. 그런데 빵을 잘못사서 정말 그냥 빵이다. 뭔가를 발라먹어야 하는 그런 빵. 나는 안에 뭐라도 들어있을줄 알았지... 어쩐지 싸게팔드라. 목이 막히지만 콜라로 겨우겨우 씹어가면서 다 먹고 사과도 먹었더니 그래도 조금은 배가 부르다.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먹기로하고 쟁겨두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새벽같이 알아서 일어나서 출발을 해야한다. 노트로 알람도 맞춰놓고 충전도 시키면서 침대에 누웠다. 아직은 잠이 안와서 오늘 있었던 일들도 기록하고 잠시 쉬었다. 와이파이는 잡혔지만 비밀번호를 몰라서 쓰질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어떻게 될지 몰라서 3일치정도는 지도와 필요한것들을 저장한 상태였다. 그렇게 저녁 8시가 채 되기전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오늘 걸은 길

(리스본 - 아르헨드라)

Today : 29.5 km

Total : 29.5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