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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writing/유럽여행기....Europe

121220 - 여행 7일차(산티아고 순례길 4일차, 산타렘 - 골레가)

파티마? 골레가?

전날 자기전에 또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곳에서 파티마로 향하느냐 아니면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로 가느냐. 거리는 어딜 들리나 비슷비슷한데 중간에 지나는 마을이 토마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수도원이 하나 있는데 다빈치코드에도 나왔던 템플기사단의 근거지여서 꼭 가보고 싶었다. 파티마도 3대성지중 하나이니 가보고 싶었고. 그래서 고민을 하던중 그냥 원래 코스인 골레가로 향하기로했다. 내가 정말 천주고 신자이면 아마 파티마를 갔을테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여행의 개념으로 걸으면서 내 자신을 생각하는 기회를 맞이한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말 보고싶은 것을 보면서 가기로 했다.

어젯밤에 전등에 말려놓은 빨래를 만져보니 뽀송뽀송하게 잘 말랐다. 역시 말리길 잘했다. 그냥 난간에 말려놓은 수건은 아직 덜 말랐지만 그래도 속옷과 양말을 말렸으니까 만족스럽다. 어제 저녁에 산 빵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숙소쪽에는 사람이 없어서 오늘도 인사를 못하고 그냥 나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침과는 다른모습. 안개가 보이질 않는다. 오늘은 날씨가 맑을까??

 

반가운 아침햇살

봄베이로스가 원래 코스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일단 지도를 보면서 중간 합류지점까지 이동하기로했다. 어제 봄베이로스 찾는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었는데 아침에 또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길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경사가 있었다. 정말 10유로 내면서 이고생하면서 자느니 그냥 시내에서 레지덴시알에서 잘껄..이란 후회만 계속하면서 걸었다. 걷다보니 왠 태권도 도장같은곳이 있었는데 자세히보니 가라테 도장이다. 태권도 도장이었으면 좀더 좋았을껄..

언덕을 다 오르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저 멀리에 빛이 보인다. 해가 점점 뜨면서 밝아지는걸 볼수있었다. 그동안 못보던 아침햇살과 시골풍경에 감탄이 절로나왔다. 오늘은 왠지 기분좋은 아침이다. 이제 언덕을 거의 다 내려왔는지 기차역을 만났다. 산타렘이 고지대에 있어서 산타렘 기차역도 외곽에 낮은곳에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그닥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도시라서 사람이 조금 있을줄 알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아침인가보다. 철길을 건너고 드디어 첫번째 화살표를 만났다. 다행히 길을 잘 찾아온것같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긴 하지만 안개가 없어서 아침햇살을 볼수있어서 좋았다. 농장을 건너면서 흙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왠지 즐겁다. 아마 내일이면 땅도 다 마를것같은 그런느낌? 오랫만에 태양을봐서 기분좋은 발걸음을 계속했다. 유럽사람들이 햇볕만 보이면 잔디밭에 누워서 일광욕을 하는 이유를 몸소 느꼈다. 햇볕이 이렇게 소중한거구나. 역시 남향으로 빛이 들어오는 집이 비싼이유가 있었구나 라는 이런저런 쓸대없는 생각을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산타렘이 보인다. 오늘 걸을길도 계속 평지가 많아서 한동안은 산타렘이 계속 보일것이다. 아무도 보지않지만 괜히 손을 흔들면서 혼자서 작별인사를 하면서 다시 묵묵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한번씩 뒤를 돌아보고 산타렘이 아직도 보이는지 확인을 했다. 왠지모르게 나를 응원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골의 장터

계속 길을 걷다보니 피게이라라는 마을에 들렸다. 그런데 저 멀리서 뭔가 싸우는듯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뭔일이 생겼나 하고 계속 걸어서 가보니 장터가 열렸다. 그냥 마을한켠에 옷들을 파는 상인이 와서 물건을 팔며 호객행위를 하고있었다. 목소리가 워낙 크고 쎄서 난또 싸우는줄 알았다. 이런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우리나라 시골마을과 같은 풍경이다. 심지어 파는 품목들도 비슷하다. 그렇게 구경을 하면서 걸어가고 그 사람들도 날 구경했다. 그냥 눈인사만 잠깐 하고 나는 다시 내 갈길을 갔다. 가이드북을 보니 이제 계속 흙길만 있어서 마땅히 쉴곳도 없을것같고 바도 슈퍼도 없었다. 그래서 들어가기전에 슈퍼에 들려서 콜라를 한캔 구입했다. 신기한게 유럽의 슈퍼에는 냉장고가 없다. 맥주건 음료수건 다 그냥 진열을 해놓는다. 대형마트를 가야 그나마 조금 있는정도? 겨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미지근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는 미지근할텐데.. 그렇다고 자판기에서 뽑아먹기는 비싸고 아이러니하다. 조금 걸어가다가 시냇물이 흐르는 다리위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콜라를 마시면서 쉬었다. 이상하게 걸으면서 힘드니까 콜라가 땡긴다. 콜라를 마시며 조금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윈도우 바탕화면

조금 걸으니 마을을 벗어나서 본격적인 흙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까지는 아니고 그냥 조그마한 언덕정도? 역시나 이곳도 물이 아직은 많이 고여있다. 그렇게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언덕을 오르다가 다시 내려막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의다 내려왔을쯤 한쪽으로 푸른 언덕이 보인다. 날씨가 맑아져서 하늘과 구름이 보이고 그 밑에는 나무는 거의없고 초록색으로 뒤덮인 자그마한 언덕이 있다. 마치 윈도우 xp 기본 바탕화면을 보는듯한 느낌. 혼자서 감탄하면서 계속 구경했다. 사진을 찍고 걸어가면서 그곳만 계속 응시했다. 정말로 이런곳이 존재하는구나. 걷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과 경험을 많이 하는것같다.

조금 더 걸었더니 어디서 물소리가 들린다. 또 강이 있나보다.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강에 도착했다. 비때문인지 물이 엄청 불어난것 같았다. 다리 한켠에 낡은 배 한척이 서있다. 정말 오늘은 보이는것 하나하나가 그림이다. 날씨도 맑고 좋은 풍경도 구경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넓게 펼쳐진 들판을 가로지으며 신나서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걸었다.

 

양치기를 만나다

어제와 비슷한 풍경이기는 하지만 햇살이 있으니 또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양떼를 만났다.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양들이 떼지어서 나를향해 오고있었다. 허허벌판에 지붕이 부셔져있는 농장을 지나고 있었는데 아마 그쪽으로 가는 양인가보다. 양치기 아저씨도 뒤에서 걸어가고 호위하는 강아지도 같이가면서 딸랑딸랑 종소리를 내며 신기하게 자기들 갈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아는 그런 양이 아니라 꼬질꼬질하다. 비온 흙탕물에서 뒹군거니?

양들도 만나고 걷다보니 어느새 흙길을 거의 다 빠져나왔다. 걷다가 한쪽에서 뭔가를 태우는 아저씨를 만났다. 아마 농사를 하다가 나온 무언가를 태우는것 같았다. 신기해서 구경을하면서 걷는데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봄디아!"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나도 "봄디아!"라며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냥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곳이구나. 한국이 아니라 유럽이구나. 그렇게 오늘 도착지인 골레가의 바로 전 마을인 아지냐가 마을에 도착했다.

 

걷기가 너무나 싫다

마을은 사람이 없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쪽 집 계단에 무리지어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NDS로 게임을 하는것 같았는데 나를보니 막 웃으면서 인사한다. 나도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순수한 아이들이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게임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PSP와 NDS로 양분되어있는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유럽쪽은 PSP보다는 NDS의 파급이 더 큰것같았다. 실제로 중간중간 몇몇 아이들이 NDS를 하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PSP는 글쎄.. 이런 포르투갈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조차 NDS를 할 정도면 게임이란게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는걸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두번째 휴식을 가졌다. 그냥 일반적인 가정집 앞에 왠 벤치가 있길래 그냥 앉았다. 앉아있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 한분이 오신다. 그냥 있었는데 앉아있는 가정집 앞으로 들어간다. 비키라고 혼내시지는 않아서 고맙게 앉아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마을이니까 힘내야지! 날씨도 좋으니까 열심히 걷기로하고 다시 출발했다.

얼마나 걸은지는 모르겠는데 지도를 보면서 걸으니 생각보다 조금왔다. 시간은 많이 지난거 같았는데 지나지도 않았고. 이제 마을이 다와간다는 생각때문인걸까? 그냥 괜히 짜증이나면서 힘들었다. 사실 그전에도 조금 있었는데 참고 걷다가 이제 점점 그게 극에 달했다. 그도 그럴것이 또다시 지루한 국도를 쭈욱 걸어가야한다. 양옆으로는 밭만있고 뭔가 구경할거리도 없다. 그저 지루한 길의 연속. 게다가 어제 터트린 물집도 아프다. 계속 아프긴했는데 짜증나고 힘드니까 괜히 더 아픈것같다. 어깨도 아프고 해가 뜨고 날씨가 좋아서 아까는 좋았지만 짜증나니까 햇볕도 짜증난다. 햇볕때문에 덥기만하다. 시간은 지나가고 걷는데 마을에 도착은 안하고. 짜증을 혼자서 내면서 억지로 걷고 걷고 걸었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

물집이 너무 아파와서 평소보다 조금 느린속도로 걸어서 그런지 꽤 오래 걸었다. 물집이 안생긴 바깥쪽 발로만 걸으니까 부담이 더 심해진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걸었는데 진짜 도저히 못걸을것 같았다. 중간에 계속 쉴곳을 찾으며 걸었지만 마땅히 쉴만한곳도 없었다. 게다가 차가 다니는곳이라 그냥 앉을수도 없었다. 억지로 참고 걷는데 조그마한 사거리가 나왔다. 그리고 한쪽에 공터가 있어서 그쪽에서 쉬기로했다. 지도상으로는 1.7km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못참을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오늘따라 왜이러지? 그래서 마을을 코앞에 남겨놓고 또다시 쉬었다. 발도 좀 풀어주고 뭉친 어깨도 풀어주고 마을이 코앞에 있어서 많이 쉬지는 않았다.

다시 가방을 고쳐메고 출발했다. 이제 정말 눈앞에 마을이 보인다. 그래도 멀긴 멀구나.... 평소 속도였으면 금방 도착했을것 같은데 30분도 더 걸린것 같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잴꺼없이 바로 봄베이로스로 향했다. 오늘도 숙소는 강당이다. 그런데 아잠부자의 강당과 다른점이라면 매트릭스도 없고 그냥 쌩 나무바닥이다. 일단은 샤워를 하려고했는데 샤워시설도 없다. 뭐지... 그냥 한층 더 위로 올라가니 대원들이 쓰는것같은 침실과 샤워장이 있었다. 그래서 후딱 씻고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샤워는 꼭 해야하니까!! 샤워를 하고 내려와서 화장실에서 빨래를 했다. 아직 햇살이 있으니까 빨래가 빨리 마를것 같아서 강당에 있는 의자를 빼서 밖에다가 놓고 빨래

 

를 말렸다. 가방을 안메니 그나마 물집이 덜 아프다. 밴드도 다시 갈아주고 이제 밥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스테이크위에 계란후라이

저녁을 먹으려고 봄베이로스를 나왔는데 딱히 먹을만한곳이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북에 마을에 식당하나가 표시되어있길래 성당앞에있는 식당을 갔더니 마침 공사중이다. 아 망했네... 그래서 봄베이로스앞에 보이는 바에 들어갔다. 말은 안통하지만 뭔가 먹을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영어를 전혀 못한다. 어찌저찌 귀동냥으로 배운 포르투갈어와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하는데 이곳은 그냥 간단한 바의 개념이라 식사를 할만한건 안판다는 이야기같았다. 중간에 식당을 몇개 보긴했는데 너무 비싸보였고 오늘도 어쩔수없이 마트에서 해결해야겠다. 아까 마트를 봐서 다시 성당앞에 마트에 들어가서 내일 먹을것과 과자를 조금샀다.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영어로 말을건다. 영어를 할줄아냐고 물으니 조금 할줄 안다면서 웃는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물어봤다.

"혹시 동네에 맛있는곳 있어?"

"싼곳? 비싸지만 괜찮은곳?"

"당연히 싼곳!!"

"저쪽으로 가서 저쪽으로가면 있을꺼야 싸고 맛있어서 나도 자주가는곳이야"

"고마워 ㅠㅠ"

이렇게 현지인에게 식당도 소개받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오늘도 밥을 먹을수가 있겠구나!! 슈퍼아저씨가 안내해준 곳으로 가니 식당이 2개가 있었다. 일단은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가서 물으니 여기가 아니고 저쪽으로 가면 될꺼란다. 그래서 식당에 도착하니 음식은 파는데 정말 작은곳. 안에는 맥주를 먹으면서 투우를 보는 아저씨 한명만 있었다. 그래서 주문을 하려는데 역시 영어를 못한다. 바디랭귀지도 잘 안통할것같고, 일단 여행하면서 배운 실전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랬더니 처음엔 잘 못알아 듣긴했는데 어찌저찌 주문을 잘했다. 오늘은 스테이크가 메뉴다!! 힘드니까 고기먹어야지 고기. 물론 맥주도 한잔 시켰다

티비에 투우가 계속 보여줘서 투우를 보다가 드디어 스테이크가 나왔다. 그런데 비주얼이 장난아니다. 스테이크와 직접 만든듯한 감자튀김, 그리고 볶음밥과 고기위에 계란후라이! 스테이크위에 계란후라이가 너무 맘에들었다. 색다른 맛이 나지않을까 하고 같이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다. 감자튀김도 밥도 맥주도 고기도 전부 맛있다!!! 역시 현지인이 추천해주는 식당이 제일 맛있는것같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게 밥을 먹으면서 전부 날아가는것 같았다. 그렇게 감동에 젖어서 밥을먹고 식당에서 나왔다.

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다시 봄베이로스로 돌아갔는데 나혼자 쓰겠다고 체육관 불을 키기도 뭐하고 그냥 어두우면 어두운채로 있어야했다. 그냥 맨 바닥에서 자서그런지 바닥의 찬기운이 올라오는것 같았다. 그래도 안에 들어가있으면 따뜻해지겠지.. 그렇게 오늘은 반은 강제로 일찍 잠들었다. 어차피 안그래도 일찍 잠잤을테지만..

 

오늘 걸은 길

(산타렘 - 골레가)

Today : 31.2km

Total : 117.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