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25 - 여행 12일차(루소, 포르투)

기분좋은 아침

어젯밤에 누으면서도 정말 기분좋게 누워서 잤는데 오늘 눈을 떴는데도 아직도 안믿겨지는건 매한가지였다. 손님이라고 원래는 어렸을때 히카르도가 쓰던방에서 잠을잤다. 방 곳곳에 예전 사진들이 있었는데 정말 지금 마티야스와 꽤 닮았다. 역시 자식은 자식인가보다. 일어났는데 바깥이 너무 조용하다. 나만 일찍 일어난것같은 느낌. 어제 다들 2시쯤 잠들었는데 내가 눈뜬 시간이 8시쯤되었다. 잠은 얼마 안잤는데 너무나 기분좋게 일어났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니까 밖으로 나가기도 뭐해서 그냥 방에서 밖에 소리가 들릴때까지 눈치껏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30분쯤 지났을까? 조금씩 소리가 들리길래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히카르도의 형과 파티마가 일어나있다. 아침인사를 하고 잠시 바깥공기를 쐬러 밖으로 나가니 형도 따라 나온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다리라면서 정원 한쪽에 우리를 풀고 흑돼지를 꺼내온다. 집에서 키우는데 거의 애완동물처럼 키우는것같다. 물을 틀어서 뿌리니 좋다고 뒹굴뒹굴대고, 배를 살살 긁어주니 좋다고 땅바닥에 덜렁 누워버린다. 마치 강아지를 보는것 같이 너무 귀여웠다.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그리고 키우는 까마귀도 있었는데 엄청나게 시끄럽다. 까마귀 밥도주고 다른 새 밥도주고 정원 구경을 하면서 형과 조금 친해진것같다. 대화는 전혀 못했지만 그래도 웃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시리얼과 요거트를 권해주길래 먹다보니 슬슬 가족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들 휴일이라 엄청나게 늦장을 피운것같다. 각자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했다.

 

건전지사러 고속도로까지

아침을 먹고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간단히 커피를 하자며 나왔다. 남자들만 나왔는데 나, 히카르도형, 히카르도, 고모부 이렇게 4명뿐이었다. 이곳도 알게모르게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그런게 있나보다. 마치 명절날 남자들은 모여서 따로놀고 여자들은 모여서 집안일하다가 모이고 이런느낌? 그렇게 카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침햇살과 에스프레소한잔을 하니 마치 유럽사람이 된것같은 느낌은 드는데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옆에앉아서 그냥 웃고 조금 이야기만하고 대부분의 대화는 3명이서 포르투갈어로 하니까... 커피를 다 먹고 집으로 갈줄 알았는데 또 어디론가 이동했다.

차를타고 이동하는데 집을 지나친다. 어디가냐고 물으니 어제 마티야스가 크리스마스선물로 무선조종자동차를 받았는데 건전지가 동봉이 안되있어서 건전지를 사러간단다. 우리나라였으면 기본적으로 조그마한 건전지는 들어있을텐데 유럽은 아닌가보다. 그런데 차가 금방 갈줄 알았는데 한참을 달려간다. 밀하다도 지나고 말라쪽으로 가길래 집에서 가져오나 생각했는데 말라도 지나가버린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당일날이라 모든 가게들이 다 쉰단다. 근처에 건전지를 살만한곳은 고속도로 휴게소밖에 없어서 지금 고속도로 휴게소로 가는중이란다. 나참... 편의점도 없고 작은 문방구 같은것도 없어서 건전지사러 차를타고 한참을 나가는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간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동네 문방구로 가던가 하다못해 작은 편의점이라도 갔을텐데... 정말 우리나라가 살기 편하다는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겨우겨우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래 이곳은 열수밖에 없겠구나. 그래도 고속도로까지는 안들어가고 국도를 이용해서 뒷문으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갔다. 아마 돌아오는것까지 생각해서 그런거겠지?

고속도로에 들어가니 특이하게 편의점 입구에 펜스가 많이 쳐져있었다. 히카르도가 그걸 보면서 몇년전에 차가 갑자기 돌진해서 사망사고가 일어났던 곳인데 그 이후 안전펜스를 설치했다고한다. 그렇게 도착한 편의점에서 건전지만 여유롭게사고 다시 차를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사람들이 한국에오면 문화충격을 받으려나?

 

점심도 파티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떤 마을에 작은 펍에서 갑자기 차를 세운다. 여기에 유명한 음료가 있다는데 한잔만 하고 가자고한다. 이탈리아가 원조인 음료였는데 지금은 사진도 기록도 전혀없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리스본에서 바베큐파티때 먹었던 상그리아와 비슷한 맛이었는데 살짝 달랐다. 그렇게 또 간단하게 음료타임을 가지고 이제 정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점심준비가 끝났다. 아침먹고 건전지만 사고왔을뿐인데 점심시간이라니... 점심은 집이 아니라 2층에 위치한 다락에서 했다. 비스켓위에 올린 푸아그라를 처음 먹어봣는데 은근히 맛있다. 푸아그라 자체를 처음먹어봤는데 마치 순대에 같이들어간 간과 비슷한 맛이랄까? 똑같이 간이니까 그게 그거인건가. 다락에는 히카르도의 형이 직접 담근 술이 있었는데 3년동안 숙성시킨뒤 오늘 처음 마셔보자면서 들떠있었다. 나도 같이 한잔을 먹었는데 뭔가 진하면서 오크통의 향이 가득하다. 정말 여행하면서 3일간 별의별 술일 다 마셔보는것 같았다. 술종류만 10종류도 넘게 먹었으니.... 그런데 이것도 맛있었다. 단순히 취하기위해서 먹는 우리나라와는달리 정말 하나의 음식으로 생각하는것 같았다. 물론 그날 생일파티 2차때는 취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마셨지만....

다락은 지금은 쓰지 않는듯 창고의 역할을 하는것 같았다. 재봉틀이 한개 있었는데 예전에는 동네 수선집 비슷하게 운영을 했다고한다. 지금도 재봉틀위에 단가표같은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가족들이 썼었던 장난감들도 한쪽에 수북히 쌓여있다. 옛날 다리미처럼 보이는 물건부터 정말 오래된 창고에서 보물찾기를 하는듯이 구경을 하다보니 점심이 다 차려져 있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와인한잔을 하고 신나게 떠들었다. 고모부도 영어를 조금 하셔서 거의 고모부와 히카르도와 대화를하고 나머지 가족들과는 히카르도가 통역을 해주어서 간간히 대화를 나누었다. 뭐 커뮤니케이션이라는게 꼭 대화가 아니라 눈빛으로 행동으로도 할수 있는거니가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거겠지. 밥을 다 먹고 잠깐 쉬는타임에 아드리아나와 다른 조카 한명이 공연을 했다. 우리도 가족끼리 모이면 손주, 손자들의 재롱잔치를 보자고 하는데 이곳도 역시 똑같은가보다. 포르투갈어로 '금요일밤에'라는 뜻이었었나? 아무튼 포르투갈에서 지금 유행하는 가요에 맞춰서 춤을 추며 재롱잔치도 했다. 아드리아나가 춤도 잘추는게 나중에 진짜 이쁘게 클것같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오늘도 나를 엄청 챙겨주셨다.

 

기차가 없다

점심도 먹고 다시 내려와서 쉬고있는데 이제 슬슬 떠날때가 되어서 준비를 했다. 히카르도네 가족들도 나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간다고해서 같이 가기로했다. 지금 쉬기도 많이쉬었고 중간부터 다시 시작하기는 애매한것같아서 일단 포르투로가서 몇일 둘러본뒤 다시 순례길을 시작하기로했다. 일단 포르투에서 묶을 숙소를 컴퓨터를 빌려서 예약을 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 친구도 등록했는데 페이스북에 올라온 군대시절 사진을 보면서 막 웃는다. 일단 숙소도 예약했고 기차를 예매하려고 도움을 받아서 사이트를 들어갔는데 차가 없다.... 왜 없지? 그래서 물었더니 인터넷으로는 안되고 밀하다역을 직접 가서 예매를 하란다. 인터넷에서 시간을 본다음에 출발하기로했다. 드디어 이 친구들... 가족들과 헤어진다. 짧은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추억을 남겨준 가족들. 떠나기전에 배고플때 먹으라면서 남은 음식들을 은박지에 싸주신다. 유럽사람들은 정이란게 없다는 소리를 들은것같은데 완전 아니었다. 헤어지기전 모두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이사진 딱 하나만 찍기로했다. 이들을 추억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모두와 작별인사를하고 드디어 출발했다. 먼저 밀하다역으로 갔는데 문이 닫혀있다. 플랫폼에 갈수는 있었는데 매표소는 전부 닫혀있다. 그런데 기차가 올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가 않는다. 히카르도에게 물어보니 크리스마스라 열차가 운행을 안한단다. 뭐이래?? 근처에 사람이 있는 역이 있을테니 그쪽으로 가보자고했다. 20여분을 달려서 역에 도착해서 마침 역무원이 있길래 물어보니 역시나 같은대답. "크리스마스라 열차가 없다" 오늘 꼭 가야하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까 이곳에는 열차가 서지는않고 아마도 코임브라에가면 열차를 탈수 있을꺼라고 이야기를해준다. 결국 다시 코임브라로 돌아가야 하는건가? 그렇게 차를타고 다시 코임브라로 향했다. 차를 타고가는데 거리가 뭔가 익숙하다. 내가 걸었던 그길을 가고있었다. 갑자기 뭔가 울컥했다. 이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걸었던 그길. 길을 보면서 길을 걸었던 모습도 떠오르고 밀하다에서 만났던 친구들, 오늘 크리스마스까지 함꼐했던 히카르도네 가족들까지 전부 떠올랐다. 그렇게 다시 회상하다보니 코임브라에 도착했다. 이번에 도착한역은 코임브라 B역. 역에 도착해서 알아보니 1시간정도 기다리면 열차가 도착할꺼라고한다. 그런데 매표소도 문을 닫았고 자동판매기도 작동이 안되어서 열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차장에게 티켓을 직접 사라고한다. 지금 가진 현금이 없어서 카드도 되냐고물으니 아마 카드도 될꺼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정말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했다. 내가 준거는 없고 너무 받은것밖에 없었다. 내가 뭘 해줄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가방에 붙어있던 태극마크를 떼서 선물로 줬다. 지금 내가 줄건 이것밖에 없다. 나는 당연히 잊지않고 히카르도도 나를, 우리나라를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물을 해서주었다. 그렇게 이제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가까스로 포르투에 도착

기차를 기다리면서 지루하게 있었다. 기다리다보니 배가고파서 아까 떠나기전에 싸주신 빵도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나 혼자만 기차를 기다리는건 아닌것 같아서 기차가 꼭 오겠지란 마음을 가지며 기차를 기다렸다. 정 없으면 그냥 코임브라서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면 된다는 마음도 가지면서.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니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온다. 도대체 이 기차를 타려고 얼마나 기다린걸까? 기차는 바로 출발을 안하고 1분정도 정차한뒤 출발했다. 아니 그런데 크리스마스라고 아예 문도 다닫고 기차도 안움직이고, 그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것같다. 기차에는 어느정도 자리는 있었는데 그냥 앉기도 뭐하고 사실 차장이 영어를 할줄 아는지도 모를꺼같아서 엄청 고민을 하고있었다. 일단 짐칸에 가방을 넣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혹시 영어 할줄알아?"

"응 왜??"

"내가 지금 포르투를 가야하는데 역이 문을 다 닫아서 티켓을 못샀거든. 차장한테 사야된다길래 좀 도와주라"

"물론이지!!"

"그런데 카드도 되겠지??"

"음... 아마 될꺼야"

이러고는 차장이 올때까지 복도에 서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려주었다. 잠시 멈춘사이에 담배를 피러 나왔다가 내가 도와달래서 도와주는데 자리를 안앉아서 그냥 입석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나때문에 일부러 같이 서서 기다려 준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하면서 밀하다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했다고 자랑도했더니 자기도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흔하지 않단다. 너는 정말 운이 좋다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난거라고 이야기해줬다. 역시 그럼 그렇겠지만 그래도 포르투갈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것 같았다. 당장 지금 나를도와주는 이 친구도 너무 고마웠고.

10분정도 기다리니 차장이 왔다. 기다려준 친구가 포르투갈어로 뭐라뭐라하더니 다 되었다고 계산만 하면 된다고 눈짓을 보낸다. 다행히 카드로 계산도 되었다. 사실 요금이 많이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딱 13유로가 나왔다. 이정도면 양호하지! 이제 정말 모든걸 다 끝냈다. 같이 도와준 친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자기자리로 돌아갔고, 나도 그냥 빈자리에 앉아서 한숨돌렸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역에 정차하기전에 크게 이야기를 해주는게 아니라 그냥 형식적인 방송이라고 할 정도로 작은소리로 한두번 이야기를 해주는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정신차리고 포르투에서 내리지않으면 큰일난다. 그나마 다행인건 큰 도시라서 아마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 결국 긴장하면서 잠도 못자고 계속 노트만 만지작거리고 사진들을 보다가 드디어 포르투역에 도착하는것 같았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준비를 하길래 옆에앉은 사람에게 포르투냐고 물으니 맞다고한다. 게다가 역 이름도 포르투가 아니어서 진짜 모르면 못내릴뻔했다. 겨우겨우 포르투에 도착을 했다.

 

이번엔 숙소를 한번에 찾다.

역에서 내린뒤 다시 메트로를 타고 내가 묶을 숙소로 이동을했다. 내가 묶는곳은 상벤투역 근처의 숙소였는데 이곳도 리스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구도심의 느낌인데다가 대성당과 가까이에 있었다. 포르투의 메트로는 신기하게 표를 찍는게 자유로웠다. 찍는 기계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게이트가 있는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안찍고 그냥타도 무방하다. 대신 사복을 입은 직원들이 불시에 검문을해서 만약 티켓이없거나 기계에 찍지를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고한다. 그래서 열심히 안보여도 찍었다. 포르투에있으면서 한번도 검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상벤투역에서 내려서 올라가니 크리스마스 캐롤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이제 크리스마스도 얼마 안남았구나. 그리고는 크리스마스때문인지 자선단체같은곳에서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일단 빨리 숙소를 가야하니 숙소로 향했다. 이게 엄청 불편한게 아까 히카르도 차에서 내리면서 괜히 힘주면서 한쪽으로 가방을 들었더니 한쪽 끈이 '쫙~' 찢어지면서 덜렁덜렁한다. 지금 이상태로 가방을 매면 떨어질게 분명해서 그냥 손으로 들고다녔다. 다행히 숙소가 숨어있지는 않아서 바로 숙소를 찾아서 올라갔다. 체크인을하고 잔금도 치루고 짐을풀고 바로 씻었다. 앞으로 3박4일동안 이곳에서 지내면 되겠구나.

 

1박 2일동안 같이 지낸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