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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writing/유럽여행기....Europe

130119 - 여행 37일차(베네치아, 무라노섬, 부라노섬)

베네치아의 아침

생각보다 침실이 추웠지만 그래도 침낭이 있어서 견딜만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지금 가장 힘든것은 휴대폰을 잃어버린뒤로 밤에 할것이 없다는것. 호스텔이면 사람들을 만나거나 컴퓨터를 쓰고있겠지만 베네치아의 이 숙소는 지금 나밖에 없다. 저녁에 나가서 돌아다닐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젯밤엔 즐겁게 지내서 다행히 넘어갔지만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가 걱정이었다. 일단은 뭐 그런걱정은 뒤로하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근처에 빵집이 있었는데 피자빵을 엄청 싸게팔았다. 오늘 아침은 피자빵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피자빵 하나를 구입한뒤 길을 나섰다.

오늘이 주말이라 그런지 마을에 장터가 열리는것 같았다. 광장에는 생선가게도 들어와있고 채소와 야채가 가득 담긴 배가 장사를 하고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오늘 날씨가 좋아서 괜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어제도 봤던 풍경이지만 맑은 하늘아래의 모습들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리도섬(Lido)

오늘은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 주변섬들을 돌아다니기로했다. 드디어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괜시리 기분이 좋다. 빠른 속력의 배도 아니지만 그냥 배를타고 바다를 나간다는것 자체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 바포레토를타고 잠시뒤 리도섬에 도착했다. 베네치아에는 차가 다니지 못하는섬이 많은데 이곳 리도섬은 특이하게 차와 버스가 다녔다. 그리고 바포레토 티켓이 있으면 다행히 버스를 이용할수가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다름아닌 '베니스 국제 영화제'때문이었다. 세계 3대 영화제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장소가 다름아닌 이 리도섬이었다. 가이드북에 대충 몇자 나온 글을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어쨌든 리도섬이라는건 확실하고 카지노에서 열린다는것도 확실했다. 그래서 버스를타고 기사아저씨에게 물어본뒤 바로 출발했다.

어찌저찌해서 카지노에 내렸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다. 순간 내가 잘못내렸나 싶어서 주위를 걸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순간 잘못내렸나 싶어서 주위를 산책했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카지노가 어디에요??"

"(흰 건물을 가리치며)저기요. 근데 아무것도 없을껄?"

"아...감사합니다"

"카지노는 운영을 안해서 영화제가 열리지 않을땐 아무것도 없어요"

순간 멍했다. 당연히 영화제가 열리는 중이 아닐땐 한산할꺼라 생각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말을 안하면 이곳이 카지노인지도 모르는 그런 흰색건물에 영화제가 열린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기념품가게나 그런것도 전혀 없었고 그냥 앞이 바다로 뚤린 아름다운 백사장과 파라솔뿐이 없었다. 그래도 이것때문에 리도섬에 온건데 아무것도 없다니 너무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바다만 쳐다보았다. 섬 자체가 큰 섬이 아니기때문에 어디를 가든 버스를 타고 가면 다시 선착장으로 갈수 있을꺼란 생각에 그냥 포기하고 섬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차들이 다녀서 그런가 정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섬이지만 두 섬의 분위기는 너무나 달랐다. 버스가 다니는 길목에 도착해서 잠시 앉아있었더니 버스가 왔다. 나빼고는 다 이 섬 주민들같이 보였다. 어색하게 혼자 자리에 앉아서 빨리 선착장에 도착하기만을 생각했다. 하나만을 보고 왔는데 그 하나가 없는 이기분은.... 그냥 이섬을 빨리 떠나고싶었다.

 

무라노섬(Murano)

리도섬에서 다시 본섬으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인 무라노섬을 가려면 리도섬에서 바로가는 바포레토가 없기때문에 본섬을 찍고 다시 가야했다. 그렇게 섬으로 돌아와서 일부러 바포레토를 갈아타고 섬을 천천히 돌았다. 걸으면서 느끼는 섬의 분위기와 바다에서 보는 섬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렇게 좀더 시간을 보내다가 바포레토를 타고 무라노섬으로 향했다.

무라노섬은 유리공예로 유명한 섬이다. 섬 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유리공예가 너무 유명해서 유리세공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일단 배에서 내리니 호객꾼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무리에 같이껴서 갔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가는 이유는 그곳이 유리공예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찾았다. 지금은 앞 사람들이 작업을 보고있었고 잠시기다린뒤에 우리가 들어갔다. 실제로 작업을 하는곳은 아닌것같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위해 만든 작업장처럼 보였다. 한 아저씨가 나오더니 빨갛게 달궈져서 말랑말랑한 유리를 입으로 불어서 호리병을 만들고, 또하나를 불어서는 이리저리 만지더니 유리로 된 말을 한마리 만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저런 공예품이 많을텐데 저런것을 이용한 여행상품을 개발할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확실히 유리공예처럼 바로 보여주는 작품들보다 손이 많이가는 작품들이 많은게 아쉽지만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유리공예'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이곳도 있으니.

유리공예를 본뒤 무라노섬을 돌아다녔다. 섬 자체는 너무 작아서 금방 돌아볼수가 있었다. 이섬에는 공업단지처럼 보이는 곳들도 있었는데 뭔가 본섬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섬이었다. 섬마다 각각 스타일이 있어서 그런가? 천천히 한바퀴를 돌아서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인 부라노섬까지는 무라노섬에서 바로 갈수가 있었다. 잠시 시간이 남아서 선착장 앞 등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나저나 갑자기 날씨가 흐려져서 걱정이다. 어째 아침에 날씨가 맑으면 낮부터 흐리던지 아니면 계속 흐리다가 저녁때나 되야 맑아지고.. 이탈리아는 나랑 날씨가 잘 안맞나보다.

 

부라노섬(Burano)

무라노섬에서 배를타고 부라노섬으로 향했다. 부라노섬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안가는곳이다. 나도 처음엔 몰랐지만 군대에 있을때 인트라넷에 어떤 사람이 유럽여행기를 쓴게 있어서 그걸 읽었는데 베네치아에서 부라노섬을 갔었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군대안에서 나중에 가야겠다고 상상만하던 그곳을 간다니 뭔가 기분이 새로웠다. 글로만 보면서 생각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정말 그런느낌일지도 궁금했다. 무라노섬에서 약 30분정도 바포레토를 타야 도착하는 꽤나 먼곳이었다. 어쨌든 도착했다. 부라노섬

부라노섬의 첫 분위기는 참 신기했다. 섬 자체가 엄청 조그마했는데 바포레토에서 내린 많은사람들이 우루루 흩어졌다. 대부분 비슷한곳을 갔는데 왠지 사람없이 혼자 돌아다니고싶어서 일부러 다른길을 택했다. 무엇보다 섬에서 가장 인상깊은건 원색으로 칠해져있는 수많은 담벼락들. 아니 담벼락이 아니라 그냥 벽이다. 파란색, 분홍색, 노란색 저마다 자기집만의 색깔을 뽐내면서 색칠을 하고 앞에는 빨래들이 걸려있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그 빨래마저 벽의 일부라고 생각되었다. 마을 풍경이 너무좋아서 광장같은곳이 있길래 그곳에 앉아서 집들을 구경했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도 생각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섬 외곽을 도는 길이 있어서 나도 그길을 따라 걸었다. 바다와 섬, 역시 이섬도 베네치아의 다른섬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군대안에서 글을 읽으며 생각한 그 섬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보는 이 섬이 더 느낌이 좋았다. 어차피 시간도 많아서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섬 한켠에 성당처럼 보이는 건물이 하나 우뚝 솟아있었는는데 그게 꼭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본건가 싶었지만 계속 보면 볼수록 기울어져 있었다. 이거 또다른 피사의 사탑인가 싶어서 성당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걸으면서 골목의 집들도 구경하고 뭔가 관광지가 아닌 정말 유럽의 평범한 동네를 구경하는 느낌으로 걸었다. 역시 나는 이런게 더 좋은것같다. 성당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기울어져있다. 그걸로 확인했으니 끝. 안으로 구지 들어가지는 않고 마을을 좀더 돌아다녔다. 작은 마을이지만 은근 볼게 많았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게 갑자기 신호가왔다. 근처에 화장실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바다로 향했다. 바다. 이 이탈리아 작은 섬, 부라노섬에 나의 흔적을 남겼다. 너무 급해서 어쩔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해결하고 사람들이 날 안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무사히 볼일을 마치고 섬을 떠나기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다시 본섬으로 가기위한 배를 기다리는데 엄청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지난 바티칸 투어때 봤던 여자분이다. 안그래도 베네치아 가는 일정이 나랑 비슷해서 잘하면 볼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혼자 저 멀리서 보고 따로 말을 걸지는 않았다. 좋은사람 같아보였는데 왠지모르게 그날은 너무 혼자있고 싶어서 따로 말을 안걸었다.

 

캐나다 친구와의 만남

어차피 무라노섬을 찍고 가기는 했지만 부라노섬에서 본섬까지는 한시간이 조금 안걸렸다. 섬에 도착해서 뭘 할까하다가 잠시 쉬기로했다. 왠지모르게 오늘따라 피곤해서 잠시 낮잠을 자려고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니 역시나 나밖에없다. 나른하고 피곤한게 거의 눕자마자 잠이 든것같다.

잠을자다가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온 남자였는데 나보다 2살인가 많았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어젯밤에 같이 저녁을 먹었던 네덜란드 친구가 뭔일인가 싶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3명이서 다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네덜란드 친구가 제안을했다.

"돌아다니다보니 오늘 이곳 성당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더라고. 킴, 같이갈래??"

"아..나는 별로 오페라는 안땡기네"

"그래?? 너는 어때?(캐나다)"

"음 글쎄......같이가지뭐. 재미있을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재미있을꺼야!"

그렇게 둘이서 오페라를 구경하기로하고 나는 그냥 따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베네치아의 야경

일단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더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어제못본 베네치아 야경을 보기위해 섬을 돌아다녔다. 역시 어디를 가나 밤과 낮의 분위기는 다르다. 밤에봤던 그곳들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면서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어차피 바포레토 티켓시간도 남았는데 대운하를 바포레토를 타고 지나가고 싶었다. 어제 하루동안 베네치아 구석구석 돌아다녔더니 왠만한 길은 다 알게되었다. 그래서 최단거리로 베네치아섬을 간단하게 한바퀴돌고 베네치아 여행의 시작점인 산타루치아 역으로 다시 향했다. 이곳에서 반대편 끝쪽인 산마르코 광장까지 향하기로했다. 그전에 마침 대형마트가 있길래 오늘 저녁에 먹을 맥주만 하나 따로샀다. 어제부터 오늘 저녁은 피자를 먹기로 생각을 해놔서 맥주만 있으면 된다.

바포레토를 타려는데 일부러 완행으로 택했다. 같은 루트지만 사람들이 주로 내리는 지역만 돌아다니는 급행 바포레토가 있었고, 모든 선착장에 다 들리는 완행이 있었는데 시간도 많은데 그냥 완행으로 타고 밖에 앉았다. 야간에 바포레토를 타고 대운하를 지나니 색다른 느낌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어제도 한번 타볼껄 그럴꺼라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완행이 좋긴좋은데 조금 가다싶으면 다시 서고 가다 서고 나중에는 조금 짜증났다. 배를 세우고 다시 출발하는데 그리 빨리빨리 되는것이 아니라서 힘들었다. 그런데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진다. 역시 오늘도 비가오는구나. 그렇게 비오는 베네치아의 수로를 바포레토를 타며 돌아다녔다.

원래는 산마르코 광장까지 가려고했는데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서 그냥 내렸다. 그리고 광장까지 걷기시작했다. 광장까지 가는 길에 운하의 야경을 찍고싶어서 내린다음 운하를 찍으며 걸어갔다. 야간의 베네치아는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어두운 수로의 끝, 중간중간 있는 개인 배들과 불꺼진 수많은 집들. 다른 유럽의 도시도 그랬지만 유독 베네치아가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안사는 집이 많은것같았다. 그렇게 우산도 안챙겨서 비를 맞으며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비가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는 산마르코 광장의 야경은 너무 좋았다. 광장 한가운데서 소리치고 돌아다니고 싶을정도. 한켠에는 뭔가 공연을 하려는건지 무대를 세우고 있었는데 어차피 내일이면 나는 떠나니 별 관심이 없었다.

 

셋이서 맥주한잔

비를 맞으며 다시 숙소로 향했다. 그전에 어제부터 봐둔 숙소근처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기위해 들어갔다. 마리게리타 피자 1판에 2.5유로. 싼것도 있었지만 진짜 피자맛집은 마르게리타 피자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많아보이는 피자집이여서 마르게리타 피자를 한번 시켜보기로했다. 우리나라에선 토핑이 많이 올라간 미국식 피자를 주로먹었는데 순수하게 피자, 토마토, 바질만으로 맛을낸 이 피자가 어떤맛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피자를 들고 방으로 올라왔다.

맥주한잔과 피자한조각. 비록 베네치아의 궁색한 방 한구석에서 먹는 피자지만 너무 맛있었다. 그동안 피자의 느끼하고 토핑의 맛만 느꼈었는데 치즈 위주의 담백한맛이 또 색달랐다. 1판이 그리 많은양은 아니어서 1판을 후딱 해치우고 맥주도 다먹었다. 비가와서 또 나가기도 귀찮고 내일 떠날 준비나 하기로했다. 내일 새벽6시 기차로 밀란으로 가야하기때문에 왠만한 짐을 오늘밤에 다 싸야했다. 게다가 나혼자 있는게 아니라 다른사람도 들어왔으니 더더욱 조용히 준비를 해야했다. 준비를 마치고 내일 새벽을 위해 다시 취침.

그런데 뭔가 시끄러운소리에 또 깼다. 그 두친구가 오페라를 다보고와서 간단하게 맥주한잔하러 나간다는것이었다.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가기로했다. 어제갔었던 그 '블루바'로 향했다. 두사람의 오페라 이야기도하고 나는 리도섬가서 속은이야기도하고 네덜란드 친구는 오늘 맘씨좋은 곤돌라 아저씨가 이쁘다고 20유로에 태워줬다고 자랑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네덜란드 친구는 영어를 잘하고, 캐나다놈은 네이티브스피커고, 내가 좀 딸렸다. 솔직히 대화의 7~80%정도만 알아들을정도. 그래서 중간중간에 이야기 듣고 받아주고 사실 어제처럼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슬슬 그냥 괜히왔다는 생각도들고 빨리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때쯤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내일 아침에 떠나기때문에 못본다고 미리 인사를 나누고 잠들었다. 왠지모르게 캐나다자식이 날 맘에 안들어 하는것 같기도했고. 마지막에 맥주먹으러는 괜히갔다. 그냥 다시 잘껄.